진보 논객으로 ‘노유진’으로 불릴 만큼 가까웠던 두 사람
“전부터 까불었다”, “옛날에 얄미웠다” 케케묵은 속내 드러내기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진보 논객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보수 측에서 본다면 둘 다 진보 진영 사람이지만, 경력이나 성격은 딴판이다. 유 이사장은 정치인 출신이고, 진 전 교수는 학자 출신이다.
두 사람은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입씨름 중이다. 화려한 입담을 뽐낸 두 사람의 인연 혹은 악연.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진중권은 원래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고 비판과 독설을 일삼은 ‘모두 까기’ 논객이었다. 그는 유 이사장을 무턱대고 공격하지는 않았다. 2002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요즘 진보’에 대해 논할 때 그는 유 이사장을 두고 “옛날 운동권은 똑똑했고 학생 대중에게 매력이 있었다. 의롭게 살았다”며 유 이사장을 높게 평가했다.
설전의 시작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사표 논쟁’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경기 고양시덕양구갑 후보로 나섰던 유 이사장은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권에 들어있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에 투표해달라”며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를 두고 진 전 교수는 “유시민의 발언은 ‘공포정치’”라며 “위기에 처한 건 유시민 의원이고 혼자 뻘 짓 하게 냅둬도 된다”고 지적했다.
입씨름을 치열해지게 만든 것은 진 전 교수가 “유시민 의원은 남자인데 특이하게도 선거 때만 되면 입으로 생리를 한다”며 “앞으로 선거가 다가오면 남성용 생리대를 입에 차고 다니라”고 한 발언이다. 설전과 별개로 당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고,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얻어 원내 3당의 지위를 얻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두 사람의 설전 2라운드는 같은 해 일어난 김선일씨 납치 및 사망 사건 때다. 이라크 파병 앞에서 유 이사장은 ‘불가피’ 하다고 했고, 진 전 교수는 “파병 철회” 입장이었다. 진 전 교수는 김선일씨 사망 소식을 언급하며 “저기 잡혀 있는 저 사내가 유시민 의원이라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라며 “국민 개인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저지르며 ‘안보’라고 부른다”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2010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유 이사장을 “리틀 노무현”이라고 했다. 언뜻 봐서는 칭찬 같지만 속 뜻은 역시 비꼬는 내용이었다.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이 당시 국민참여당 소속으로서 경기지사에 출마하려 하자 “노무현 정신을 이으려면 경기도가 아닌 대구로 갔어야”했다고 비판했다. 상대적으로 편한 수도권이 아닌 험지 대구로 가서 보수 진영 후보와 맞붙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진 전 교수는 유시민 후보의 경쟁 상대였던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경기지사 후보 곁에서 정책개발 특보단을 맡아 선거를 도왔다. 하지만 나중에 심 당시 후보가 선거를 포기하고 유 이사장을 응원하겠다고 선언하자 입을 닫았다. 다만 “명분과 작은 정당을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단일화를 할 수 있다”며 마지못해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두 사람이 뜻밖에도 한 목소리를 낸 시절도 있다.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이 불거질 무렵이다. 당시 당권파의 난투극으로 상황이 악화하자 비당권파였던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했던 날의 방향을 박근혜 정부로 틀었다.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이 청구되자 진 전 교수는 트위터로 “대한민국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고, 유 이사장은 “격하게 동의한다”며 그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시기는 2014년 팟캐스트 방송 ‘노ㆍ유ㆍ진의 정치카페’ 활동기다.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진행자로 나선 방송으로 이들 이름 앞글자를 딴 방송이었다. 이들은 당시 정의당 소속 당원으로서 화려한 입담을 뽐냈다.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는 노 전 의원과 함께 약 2년간 총 100회 방송을 통해 정의당을 대중에 각인시킨 성과를 올렸지만, 이들에겐 ‘철저한 비즈니스’였던 듯하다. ‘노유진’ 세 사람은 2015년 교보문고 ‘작가와의 만남’ 인터뷰에서 “(방송) 녹음 끝나고 세 분이 함께하는 일정이 있나”라는 물음에 “없어요. 끝나고 같이 하는 건 해산”이라고 답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유 이사장이 진 전 교수를 향해 “전에는 많이 까불었는데 잘해준다”고 하자 진 전 교수가 “예전에 많이 얄미웠다”며 농담조로 말했는데, 두 사람의 친분도 여기까지였다.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의 입 속 칼끝이 다시 서로를 겨누게 된 건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을 두고 입장이 갈라지면서부터다. 두 사람 모두 조 전 장관과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장의 차이는 커져갔다.
유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등을 통해 위조 의혹을 다루는 검찰 수사의 부당함 등을 지적했지만, 진 전 교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동양대에 제출한 사직서를 공개하며 “총장이 부도덕하다고 조국 딸 표창장이 진짜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위조 의혹에 힘을 보태며 유 이사장의 반대편에 섰다.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의 설전은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진 전 교수는 지난해 12월 25일 “문빠들은 다들 서울대 법대 나오셨나 보다. 내가 그 모욕을 당하고 또 당하다 결국 사직서를 냈는데 이번엔 작가라는 분이 이번엔 사직서를 냈다고 모욕을 한다”고 날 선 표현으로 쓴 글을 공개했다. 이에 유 이사장이 “진 교수의 장점은 논리적 추론 능력과 정확한 해석 능력이었다”며 “진 교수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 사고력이 1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감퇴했는지 자가진단하길 바란다”고 맞받아치면서 격해졌다.
유 이사장의 발언에 진 전 교수가 “진중권의 논리적 사고력, 그동안 살아본 경험까지 보태져 10년 전보다 낫다”며 “저게 다 자신의 발언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유 작가의 일관된 삶의 태도의 발로라 이해한다”는 말로 대응했다. 그는 또 “이분, 60 넘으셨죠?”라며 과거 유 이사장이 한 강연에서 “60대가 되면 책임 있는 자리에 가급적 가지 않겠다”고 한 발언을 비꼬듯 언급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조 전 장관 사태를 통해 진보 진영 내부도 금이 가고 찬반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향해 감정 다툼까지 벌였던 상황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다.
해가 바뀌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차갑다. 새해 시작부터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신년 토론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앙금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을 두고 “판타지물이다”, “그런 거 안 본다”고 말하자 유 이사장은 “서운하다” “저는 ‘노유진의 정치카페’ 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토론 끝 부분에 두 사람은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누가 봐도 화해는 아니었다. 진 전 교수는 2일에도 페이스북에 유 이사장의 사진을 올리며 “이분, 또 거짓말을 한 모양”이라며 비난했다. 두 사람 사이가 이미 감정적으로 상할 대로 상한 만큼 유 이사장의 반응이 유쾌할 리가 없다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유 이사장의 말대로 조 전 장관 딸의 동양대 표창장 의혹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두 사람의 설전은 입씨름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두 사람 관계는 조국 일가 수사가 끝난 뒤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그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계기로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화해의 계기를 찾을 지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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