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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감추지 말고 들추자… ‘똥’ 공론화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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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감추지 말고 들추자… ‘똥’ 공론화 필요한 이유

입력
2020.01.02 15:17
수정
2020.01.0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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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앉아 있는 남자. 게티이미지뱅크
변기에 앉아 있는 남자.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똥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1년 내내 붙잡을 거창한 화두를 골라야만 할 듯한 신년 벽두부터 말이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린 후, 방금 한 일을 곧바로 잊”는 건 영국에 사는 저자뿐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일 독자 여러분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매번 똑같이 해온 당연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배변은 사생활의 영역이다. 화장실만큼 안락한 공간이 없다고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거기에서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중국은 아직 예외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고독은 허용돼야 하는 법이다. 대개 화장실은 상사의 전화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더욱이, 딱히 공공연히 떠들 이유가 없는 게 배변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나.

하지만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똥이 이른바 문명 사회에서 마치 애초 없던 것처럼 소외돼버린 게 이런 소극적 무시의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똥은 적극 외면 당해왔다. 금기어로 전락해 대변이나 배변 활동 같은 의학 용어 또는 용변, 볼일 등 점잖은 단어로 대체됐다. “구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청교도가 부상하면서 인체의 부산물은 더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돼 가장 모욕적인 표현의 재료가 됐다. 가능한 한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뭔가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보기 싫다고 똥이 저절로 사라져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발 밑과 같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환기시킨다. 따돌리고 잊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실제 인간을 똥과 격리하는 일이다. 단지 혐오스럽기만 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게 똥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지식 콘퍼런스인 '테드'에서 강연 중인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의 저자 로즈 조지. 카라칼 제공
세계적 지식 콘퍼런스인 '테드'에서 강연 중인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의 저자 로즈 조지. 카라칼 제공

저자는 “화장실은 분명 특권”이라고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 약 26억명이 위생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 10명 중 4명은 재래식 화장실, 변기, 양동이는 물론 상자 같은 것조차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비위생과 터부는 시너지를 창출한다. “여자들은 강간이나 뱀에게 물릴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 일어나 껌껌한 야외에서 용변을 본다. 그들 대부분은 배설물에 오염된 환경에서 산다. 그 결과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병이 퍼진다.”

그러나 위생을 가난한 국가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빈곤국 질병도 국경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똥을 공론장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똥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위생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터부가 차별을 낳는다는 점도 문제다. 인도에서는 철로나 막힌 하수도 등을 찾아가 똥을 치우는 이를 ‘수거자’라고 부른다. 추산 규모가 40만~120만명에 이른다. 인도인들은 고백한다. “사람들은 수거자와 점심은 같이 먹지만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무조건 감추는 것도 옳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하는 얘기예요.”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

로즈 조지 지음ㆍ하인해 옮김

카라칼 발행ㆍ480쪽ㆍ1만6,800원

수세식 변기의 효용성을 저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저자가 마지막 장(章)에서 소개하는 ‘생태 화장실’도 대안 중 하나다. 전통적 하수 처리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대신 배설물을 적절히 처리해 재활용해 보자는 환경 친화적 발상이다. 그렇다고 진화에 대한 저자의 전망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연한 사고가 가능하다는 정도다. 저자는 일갈한다. “위생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관심이다. 부끄러움의 굴레를 벗어 던져야 한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미국과 영국, 일본,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등 세계 곳곳의 현장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화장실ㆍ하수도 실태를 들여다봤다. 주로 질문을 던지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해법 고민을 하기도 한다. 호기심 충족에도 유용하다. 원저가 출간된 해는 2009년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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