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넘사벽’이다. 고도의 전문 영역이라 섣불리 덤비기 어렵고, 복잡한 수치와 실험을 동원해 우기면 반박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손댈 수 없는 성역은 없고, 과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과학의 품격: 과학의 의미를 묻는 시민들에게’는 콧대 높은 과학의 민낯을 파헤친 책이다.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했던 과학저널리스트 강양구씨가 지난 17년간 과학 기술의 역설을 폭로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한 글을 엮었다. 미세먼지부터 기후대응, 블록체인까지 현재 논의되는 과학 기술 이슈가 총망라됐다.
책의 첫 머리를 장식한 황우석 사태는 과학입국(科學入國) 구호 아래돈벌이 도구로 전락한 한국 과학 기술의 품격을 본격적으로 따져 묻게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돈과 권력에 취한 과학이 얼마나 손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어마어마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했지만, 그 덕분에 과학 기술 연구와 관련된 윤리 기준과 연구 시스템을 세울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점도 낱낱이 고발한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각광 받는 공유경제는 “작은 노동자들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로 전락했고, 초연결 시대의 집단지성은 가짜뉴스와 집단 바보를 양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과학의 품격
강양구 지음
사이언스북스 발행ㆍ448쪽ㆍ1만6,500원
매번 쓴 소리를 내뱉는 저자가 현장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저자는 까칠함을 버릴 생각이 없다. 날 선 비판이야말로 과학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치열한 투쟁에 시민들도 동참하길 제안한다. 돈과 경제, 권력의 하수인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기에 그렇다. 과학기술의 진짜 주인은 사람이란 걸 일깨워주는 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n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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