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아하! 생태II] 월동하러 4000㎞를 날아오는데… 겨울 보금자리 지켜주세요

입력
2020.01.04 04:40
수정
2020.01.04 14:04
12면
0 0
강원 강릉 남대천에서 만난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청둥오리 수컷.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강원 강릉 남대천에서 만난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청둥오리 수컷.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봄과 여름 동안 다양한 생명체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저마다 가장 자신 있는 빛깔과 몸짓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가을을 지나 맞게 되는 겨울은 대부분의 생명에게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휴식시간처럼 보입니다. 이 때문인지 자연의 겨울 풍경은 다른 계절에 비해 조금은 조용하고 쓸쓸한 느낌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겨울의 자연 속에는 오히려 다른 계절에 볼 수 없는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와 활기가 넘치는 곳들도 많습니다.

이 손님은 바로 겨울철새들입니다. 새들은 날개가 있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데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는 곳(번식지)과 겨울을 나는 곳(월동지)이 아주 멀리 떨어진 종류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계절에 따라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는 새들을 철새라고 하며, 관찰되는 시기에 따라 다시 여름철새, 겨울철새, 통과철새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계절에 따라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며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철새 중에는 오리류, 기러기류, 갈매기류 등과 같이 유달리 사람들에게 친숙한 종류들이 많습니다. 이는 산새류에 비해 덩치가 크고 강과 하천, 호수, 해안가 등의 넓은 습지에 무리를 지어 사는 종류들이 많아 다른 새들과 비교해 대체로 쉽게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표적 겨울철새 오리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다양한 겨울철새들이 날아와 겨울을 날까요. 우리나라에는 500여 종 이상의 새들이 기록되어 있고 이중 국내에서 겨울을 보내는 겨울철새의 정확한 종 수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50여종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겨울철새로는 오리류, 기러기류, 갈매기류를 들 수 있으며 이외에도 고니류, 두루미류, 떼까마귀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겨울에 얼마나 많은 수의 겨울철새들이 찾아올까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매년 겨울철새가 많이 월동하는 전국의 주요 습지 200개소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새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같은 날 동시에 조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2019년 1월에는 전국 200개 습지에서 총 193종 147만여 마리의 새가 관찰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물새이자 겨울철새로 200개소 이외에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지역도 많으며, 겨울철새 중에는 물가를 좋아하는 물새류뿐 아니라 작은 산새 종류도 많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매년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원 강릉 남대천에서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청둥오리 암컷이 헤엄을 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강원 강릉 남대천에서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청둥오리 암컷이 헤엄을 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겨울철 동시조사 결과에서 가창오리가 35만여 마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다음으로 쇠기러기, 청둥오리,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의 순서로 많은 수가 월동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이 종들 중에서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는 일부가 한국에서 번식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겨울철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로 이 글에서는 겨울철새로 봤습니다). 이들 겨울철새 중 분류학적으로 기러기목(Order Anseriformes) 오리과(Family Anatidae)에 속하는 종들인 오리류, 기러기류, 고니류들이 33종 103만여 마리로 전체 마릿수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중 오리류는 속하는 종들이 25종 73만여 마리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수가 월동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라 할 수 있습니다.

◇오리류들 어디에서, 왜 날아올까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류를 포함한 겨울철새들은 봄이 되면 북쪽의 번식지로 돌아갑니다. 봄과 여름 동안 번식지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가을이 되면 다시 우리나라로 오는 먼 여정을 매년 되풀이합니다. 그렇다면 겨울철새들이 번식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번식지와 월동지로 가기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할까요. 겨울철새들이 번식하는 지역의 위치와 범위는 종마다 차이가 있고 현재까지도 이에 대해 명확히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그간 각 지역에서의 관찰 결과를 통해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고위도 지역에 넓은 범위로 퍼져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위치추적장치와 같은 기술을 활용해 종별로 정확한 번식지역과 월동지역, 그리고 이 두 지역 사이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위치추적장치를 이용한 국립생물자원관의 종별 이동경로 연구에 따르면 청둥오리는 극동 러시아 북부에 위치한 부라티야와 이르쿠츠카야, 중국 북부의 내몽골과 헤이룽장성 등에서 번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월동지인 우리나라까지의 이동거리는 1,500여㎞에서 2,700여㎞나 됩니다. 특히 고방오리, 홍머리오리는 러시아의 추코츠키 지역, 가창오리는 러시아의 레나 삼각주가 번식지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지역은 북극과 인접한 고위도 지방으로 우리나라로부터의 직선거리만 4,000㎞ 이상 됩니다.

청둥오리 등 오리류 5종의 이동경로를 지도 위에 표기한 그림.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청둥오리 등 오리류 5종의 이동경로를 지도 위에 표기한 그림.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왜 오리류들은 이렇게 힘들게 먼 거리를 이동할까요. 이는 각각의 계절에 따라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오리류는 번식기가 되면 광활하게 펼쳐진 초지와 습지 환경을 좋아합니다. 이런 환경은 새끼를 낳고 키우는 시기에 서로 간의 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제공해 주며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동물성 먹이가 풍부해지기 때문입니다. 새끼들이 다 자라날 수 있게 되면 번식지에도 겨울이 찾아옵니다. 고위도 지방의 겨울은 빨리 찾아올 뿐 아니라 그 추위는 매우 혹독합니다. 추위에 잘 적응한 오리류라 할지라도 그러한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겨울이 따뜻하고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것입니다.

◇수면성과 잠수성 오리

대부분의 사람은 정확한 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야외에서 야생의 오리를 만났을 때 다른 새와 비교해 쉽게 구분하는 편입니다. 이는 집오리를 통해 이미 오리류의 특징에 친숙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집오리는 고기와 알을 얻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키운 종류로 청둥오리와 깃털 빛깔은 다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종입니다. 이 집오리의 원종인 청둥오리는 오리류 중에 가장 많고 넓적한 부리와 발가락 사이의 물갈퀴 같은 오리류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청둥오리를 포함해 오리류 중 다수의 종은 우리 주변의 하천과 강, 호수, 해안가 등에서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철 한국을 찾는 다양한 오리를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각각의 종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생물종을 구분하고자 할 때 우선은 생태나 형태의 공통점을 찾아 크게 무리로 묶어 보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오리의 경우 살아가는 모습, 즉 생태적인 특징으로 수면성 오리와 잠수성 오리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수면성 오리인 알락오리 한쌍(왼쪽 암컷, 오른쪽 수컷)이 헤엄을 치고 있다. 먹이를 찾을 때 잠수하지 않는 오리를 수면성 오리로 구분한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수면성 오리인 알락오리 한쌍(왼쪽 암컷, 오른쪽 수컷)이 헤엄을 치고 있다. 먹이를 찾을 때 잠수하지 않는 오리를 수면성 오리로 구분한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집오리의 원종인 청둥오리가 가장 대표적인 수면성 오리입니다. 이외에도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쇠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리, 홍머리오리, 넓적부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수면성 오리는 수면을 헤엄치며 다니지만 잠수는 거의 하지 않는 종류입니다. 수면이나 얕은 물속, 물가 인근 초지 등에서 수초나 씨앗 등 식물성 먹이를 주로 먹으며,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이삭 등도 수면성 오리의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이에 비해 잠수성 오리는 수면을 헤엄치며 수시로 잠수하는데 이는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물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잠수성 오리는 대표적으로 흰죽지, 검은머리흰죽지, 비오리, 댕기흰죽지, 흰뺨오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흰죽지, 검은머리흰죽지, 댕기흰죽지와 같은 흰죽지 종류는 물속에 사는 수서곤충이나 조개 등의 무척추동물을 좋아하며 비오리 종류는 물속을 헤엄쳐 물고기를 사냥해 먹습니다. 부리가 넓적한 다른 오리류와 달리 비오리 종류는 물고기를 잡는 데 유리하도록 부리가 길고 뾰족한 편입니다.

강원 속초 청초호에서 만난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수컷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강원 속초 청초호에서 만난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수컷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겨울철 하천가 산책로를 걷다 보이는 오리들이 수면에서만 헤엄치며 먹이를 먹는지, 아니면 수시로 잠수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 보세요. 그렇다면 정확한 종을 알 수 없더라도 그 오리가 수면성인지, 아니면 잠수성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리류로 착각하기 쉬운 물새

겨울철 우리 주변의 습지에서 볼 수 있는 새들 중 오리로 착각하기 쉬운 종들도 있습니다. 오리류에 속하지 않지만 멀리서 보면 형태나 습성이 오리류와 비슷해 오리류로 착각하는 종들 가운데에는 논병아리와 물닭이 있습니다. 논병아리는 잠수를 잘해 잠수성 오리와 비슷해 보이며, 물닭도 잠수를 잘 하지만 수면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이 수면성 오리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 두 종은 오리류와 비교해 부리는 비교적 짧고 뾰족한 편이며 오리와 달리 발에는 판족이라 하는 발가락마다 분리된 지느러미 같은 형태의 물갈퀴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오리로 착각하기 쉬운 논병아리.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오리로 착각하기 쉬운 논병아리.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리류

여러 오리류가 우리에겐 비슷해 보이는 공간에 함께 어울려 살아갑니다. 사람들에겐 비슷한 공간으로 보이지만 하천이나 강, 호수 등은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심도 다양할 것이며 물가의 가장자리가 모래나 암석이거나 식물로 덮여 있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물가의 주변도 논으로 둘러싸여 있을 수 있으며, 아니면 숲이나 산이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속의 환경도 물밖의 환경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다양한 오리류가 동일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각자가 좋아하는 환경과 먹이를 고유의 방식으로 나누어 이용하며 생활해서입니다. 앞서 오리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크게는 수면성 오리와 잠수성 오리로 나누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 종에 있어서도 선호하는 환경과 먹이에 조금씩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듯 동일한 공간에서 각자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나누어 이용함으로써 월동지에서 공존하며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점점 힘들어지는 겨울나기

북쪽의 먼 곳에서 우리나라로 날아와 겨울을 보내는 오리류들의 겨울나기는 점점 더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오리류가 살아가려면 습지의 다채로운 환경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천의 흐름을 직선화한다거나 하천이나 호수의 가장자리를 콘크리트로 단순화시키게 되면 환경의 다양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습지 환경을 찾아 날아오는 오리류들에게 적합한 공간은 그만큼 적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편의를 늘리고 홍수나 가뭄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은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습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경우에는 이를 이용하는 존재가 사람만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 환경의 다양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하 생태. 오리로 착각하기 쉬운 물닭.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아하 생태. 오리로 착각하기 쉬운 물닭.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앞서 수면성 오리에게 추수가 끝난 논에 남겨진 낱알은 중요한 먹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요즘에는 논에 남아있는 볏짚을 사료용으로 걷어 들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경우 낱알과 이삭들도 볏짚과 함께 사라져 오리들의 먹이가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먹이를 찾아 논으로 날아오는 오리류와 기러기류들을 위해 볏짚을 남겨두면 좋겠지만 농사짓는 분들의 배려와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일종의 계약을 통해 논에 볏짚을 남겨두면 이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오리류를 비롯한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다양성을 유지함으로써 마지막에 혜택을 받는 존재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은 계속 고민되어야 합니다.

이번 겨울 가까운 하천이나 호수, 해안가를 찾아 야생의 오리를 만나보면 어떨까요. 이들을 가까이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환경과 생물의 다양성을 직접 확인해보고 같은 공간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자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우리나라 새의 분포와 이동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보시려면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운영 중인 ‘철새정보시스템’(species.nibr.go.kr/bird)을 방문해 주세요.

허위행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