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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계의 빈곤] ‘샤오캉’ 중국몽 그늘… 6억명은 월수입 1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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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계의 빈곤] ‘샤오캉’ 중국몽 그늘… 6억명은 월수입 17만원

입력
2020.06.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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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억명이 추가로 빈곤에 내몰릴 수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 앞서 경고한 내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빈곤율은 1998년 이후 22년만에 반등할 전망이다. 이에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각국은 동시에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중국ㆍ일본ㆍ미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사례를 통해 총체적 위기를 헤쳐나갈 해법과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를 짚어봤다. 

 창간 66주년 기획 <1> 중국, 불안한 샤오캉 시대 

 “절대빈곤 퇴치” 전방위 속도전 

 대표적 빈곤마을 허베이성 난위촌 

 정부 지원 4년 만에 소득 3배 급증 

 4~5㎞ 떨어진 산골마을 주민은 

 “밑바닥 못 벗어나… 딴 세상 얘기”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의 개조 이전 건물 모습. 부빈기금회 제공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의 개조 이전 건물 모습. 부빈기금회 제공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을 민박 마을로 개조한 이후 달라진 건물 내부. 부빈기금회 제공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을 민박 마을로 개조한 이후 달라진 건물 내부. 부빈기금회 제공

“지금은 웃고 있지만, 가난에 찌들던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남서쪽으로 150여㎞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난위(南峪)촌. ‘남쪽의 골짜기’라는 지명답게 깎아지른 듯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쉬전메이(徐振梅ㆍ75) 할머니는 “이처럼 황폐한 마을도 없을 것”이라며 “옥수수와 호두, 산초 농사로 먹고 사는데 그나마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으면 허탕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반대로 비가 쏟아지면 마을 진입로가 막혀 돌산을 기어가다시피 넘어가야 간신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겨우 생계를 유지할 만한 밭작물조차 “소련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정부에서 걷어가 다시 배급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과거를 떠올릴 용기가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중국의 대표적 빈곤마을이던 난위촌은 그러나 지금은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2015년 민간단체인 부빈기금회가 민박사업을 시작하면서 정부가 뒤를 받치고 기업들이 적극 지원사격을 한 덕분이다. 그 결과 2014년 2,600위안(약 44만5,000원)에 그쳤던 1인당 연간 평균소득이 2015년 2,800위안(약 47만9,000원), 2016년 3,200위안(약 54만7,000원), 2017년 4,400위안(약 75만3,000원), 2018년 7,200위안(약 123만2,000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에서 만난 쉬전메이 할머니. 그는 “빈곤에서 벗어난 현재의 삶에 너무나 만족한다”면서 “지긋지긋한 가난에 찌들던 예전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김광수 특파원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에서 만난 쉬전메이 할머니. 그는 “빈곤에서 벗어난 현재의 삶에 너무나 만족한다”면서 “지긋지긋한 가난에 찌들던 예전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김광수 특파원

리진화(李金華ㆍ47ㆍ여)씨는 “월급을 받고 수익금도 함께 나누면서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며 “예전에는 하늘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갔지만 이제는 도시에 나가 일할 때보다 더 많이 번다”고 말했다. 231가구, 671명의 마을 주민들은 지긋지긋한 빈곤의 문턱을 2018년 모두 넘어선 상태다.

난위촌이 주목 받으면서 인근 다른 동네의 사정은 어떤지 궁금했다. 10분 가량 차를 타고 4~5㎞ 산길을 올라 량수이취엔(凉水泉)으로 향했다. 큰 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마을에 들어서자 휴대폰 신호가 끊겼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중국 3대 통신사 가운데 이동통신(차이나모바일)만 사용한다고 했다.

인기척이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난위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리우(劉ㆍ61)씨는 “그 동네는 촌장이 마을을 잘 관리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가 더 가난하지만 부러워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마침 이웃 주민 리우(劉ㆍ67)씨가 놀러 왔길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난위촌과 달리 우리는 집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개발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면서 “교통 사정도 열악해 정부도 지원 사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푸념하듯 내뱉었다.

중국 허베이성의 대표적 빈곤마을이었던 난위춘 전경. 가파른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김광수 특파원
중국 허베이성의 대표적 빈곤마을이었던 난위춘 전경. 가파른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김광수 특파원

동네 어귀에서 지나가던 50대 남녀를 만났다. 남성(56)은 “우리와 난위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며 “60여 가구중에 최소 10가구 이상은 아직도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전면적 샤오캉(小康ㆍ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경계의 눈초리로 한발 떨어져 듣고만 있던 여성(52)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더니 “TV에서 매일 같이 떠들던 말 아니냐”면서 “전혀 달라지는 게 없어 우리 마을은 어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부심에 젖어 “현재 생활에 100% 만족한다”고 외치던 난위촌과는 민심의 결이 사뭇 달랐다.

이처럼 중국은 빈곤 구제의 눈부신 성과와 그 이면에 숨겨진 상대적 박탈감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 수준에 진입했고 340개 빈곤지역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면서 “돌격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독려했다. 지난 1일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에는 “우리는 이미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 목표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는 시 주석의 선언이 실렸다.

실제 수치상으로는 빈곤인구가 매년 1,000만명 이상씩 감소해 2012년 10.2%이던 빈곤률은 지난해에 0.6%로 급감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2021년 ‘빈곤율 제로(0)’를 달성할 꿈에 부풀어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산시성 안캉시를 찾아 빈곤구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 재배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안캉=신화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산시성 안캉시를 찾아 빈곤구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 재배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안캉=신화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빈곤 구제는 방역 못지 않은 최우선 과제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52개 지역의 1,113개 빈곤마을에 308억위안(약 5조2,717억원)을 쏟아 부었다. 지난 4월 말까지 빈곤층의 95%가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4만개의 빈곤 구제 생산품목을 지정하고, 전염병으로 인해 다시 빈곤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는 38만명을 집중 추적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지난해 8월까지 빈곤퇴치사업 융자규모는 1,492억위안(약 25조5,370억원)에 달하고, 국내기업과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8만8,100곳이 지난 4년간 빈곤 구제에 쏟아 부은 자금만 892억9,000만위안(약 15조2,000억원)이다.

하지만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하다 보니 빈부 격차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1인당 연간 평균소득은 3만위안(약 513만원)에 달하지만 14억 인구 가운데 6억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원)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도시와 농촌 간 주민들의 가처분소득 격차는 1978년 210위안(약 3만6,000원)에서 2017년 2만2,964위안(약 393만원)으로 100배 가량 늘었다. 업종별로는 1978년 전력가스업종과 사회서비스업의 소득 격차가 458위안(약 7만8,000원) 정도였지만 2017년 기준 정보통신(IT)업종과 농림업 종사자 소득은 9만6,646위안(약 1,654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지역별로는 상하이(上海) 주민의 평균 가처분소득이 티베트 주민의 4배에 달한다.

도시로 상경한 3억명 농민공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농촌에 집중된 탓이다. 이들은 ‘가장 무기력한 도시’로 베이징을, ‘가장 사회적 지원이 적은 도시’로 상하이를 각각 꼽는다. 일찍이 덩사오핑(鄧小平)은 “만약 정부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면 우리는 분명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현실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인대 폐막 후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인구 가운데 6억명은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 정도”라며 빈곤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인대 폐막 후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인구 가운데 6억명은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원) 정도”라며 빈곤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이에 전국민 기본소득의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전국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인 14억명 모두에게 2,000위안(약 35만원)씩, 총 2조8,000억위안(약 443조원)을 지급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등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한 긴급 보조금을 제외하면 정부의 채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정책수단의 폭을 좁힐 수 있어 아직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장웨이웨이(張維爲) 푸단대 중국연구원장은 ‘중국은 지금’프로그램에 출연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정답은 없다”면서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공동의 부를 견인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수억 명이 빈곤하다면 타깃을 정할 수 없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절대 빈곤 인구를 최소로 줄인 뒤 정부가 강력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난위촌(허베이성)=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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