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경자년(庚子年)이 밝았지만 경제의 ‘혈맥’인 자금을 융통하는 은행의 수익 전망은 썩 밝지 않다. 각종 투자수익을 전방위로 짓누르는 초저금리 기조에다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저마다 몸집을 줄이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박차를 가하며 ‘우선 생존’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한숨 쉬는 은행권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은 한결같이 올해 신년사에서 위기 극복과 변화를 강조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국내외 경기 침체, 저성장ㆍ저금리ㆍ저물가 등 ‘3저 현상’의 지속, 핀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 등을 언급하며 직원들에게 “심기일전”을 당부했다.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도 “올해는 특히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올해 은행 경영환경이 더 어두워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요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많게는 반토막나는 상황에서도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상반기에만 전년보다 4,000억원 늘어난 8조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나름 선방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통상 시중금리가 낮아지면 은행들의 예대마진(예금 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이)이 줄고 수익이 나빠진다. 그나마 대출을 늘릴 수 있다면 사정이 낫겠지만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다. 굵직한 가계대출은 정부의 12ㆍ16 부동산 대책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강화 등으로 사실상 막혔고, 불경기 여파에 중소기업 및 소규모 사업자 대출도 늘리기 쉽지 않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신탁판매 총량을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면서 비이자이익을 늘리기도 어려워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부터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금 비율) 산정 시 가계대출 가중치가 상향 조정되는데다 금융소비자 보호도 강화돼 숨만 쉬어도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요즘은 ICT기업과도 경쟁해야 해 수익성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올해도 마른 수건 쥐어짜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리띠 졸라매기 경쟁
이에 따라 은행의 대표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해 상반기 8.64%에서 올 상반기에는 7%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ROE 10%는 자기자본 100원으로 10원을 번다는 의미인데, 그만큼 수익 전망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은행ㆍ보험연구실장은 “은행의 대출자산 성장률도 지난해 상반기 6.1%에서 올해는 5% 초중반으로 떨어지고 시장금리 하락으로 순이자마진(NIM)도 작년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은행들은 올해 경영목표를 작년보다 보수적으로 잡거나 지점과 인력을 줄여 관리비용을 아끼는 식으로 앞다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디지털 바람을 타고 은행 지점 수가 지난 5년간 500여개 줄어든 상황에서, 올 연초에도 60여개 시중은행 지점이 통폐합을 앞두고 있다. 우리은행은 공릉역지점 등 서울에서만 3개 지점을, 신한은행은 PWM강남대로센터 등 3개 지점을 인근 지점과 통폐합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각 은행들의 희망퇴직도 진행형이다.
이자에 기댄 수익구조에서 벗어난 새 사업모델 발굴도 불가피해졌다. 은행들은 공통적으로 △디지털 경쟁력 강화 △신남방 등 글로벌영업 가속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올해 경영 목표로 꼽고 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글로벌 진출의 청사진을 재검토해 적극적인 현지화와 인수합병(M&A)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