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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우간다 캄팔라에서 만난 로부스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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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우간다 캄팔라에서 만난 로부스타 커피

입력
2020.01.01 09:00
수정
2020.01.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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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카페인의 오해와 진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나카케로 시장. 캄팔라는 적도와 가깝지만, 구릉지대에 있어 매우 쾌적하다. 하지만 사람과 차로 북적거리는 시장은 역동적인 삶의 열기로 다소 덥게 느껴졌다. 최상기씨 제공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나카케로 시장. 캄팔라는 적도와 가깝지만, 구릉지대에 있어 매우 쾌적하다. 하지만 사람과 차로 북적거리는 시장은 역동적인 삶의 열기로 다소 덥게 느껴졌다. 최상기씨 제공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Kampala)는 아프리카 최대 담수호인 빅토리아호의 북쪽 연안에 접하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끼고 있지만, 동아프리카 지구대(Great Lift Valley)에 위치해 있어 도시는 평균 1,150m의 구릉에 형성돼 있다. 덕분에 적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주야를 막론하고 연간 기온이 17~29도 사이를 벗어나지 않는 사시사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도시 이름이 아프리카 사바나에 서식하는 임팔라(Impala) 라는 초식동물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서 우간다 친구에게 물었다. 캄팔라는 사하라 남쪽 지역 공용어인 반투어로 ‘영양(羚羊)의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무관치 않은 듯했다.

며칠 동안 동으로 서로 정신 없이 먼 길을 오가면서 여독이 쌓이는 것을 느끼던 차에 하루를 캄팔라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도심은 두 개의 큰 도로인 캄팔라 로드와 엔테베 로드를 중심으로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일상의 터전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세계의 다른 도시들처럼 캄팔라의 가장 시끄럽고 역동적인 곳은 시장이다. 일행을 태운 차는 야채와 생선, 생필품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나카케로(Nakakero) 시장을 관통했다. 합승 미니버스인 마타투와 오토바이, 낡은 트럭들 사이로 분주히 오가는 상인들과 짐꾼들. 차는 이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한참을 멈춰 있었지만, 삶의 열기를 내뿜는 시장 풍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온 지구 사람들의 가장 공통적인 생활 형태는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전통시장 풍경과 지구 반대편 우간다 시장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복잡한 도심을 빠져 나온 차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어느 커피 공장이었다. 우간다 커피 생산자조합인 누카페(NUCAFE)의 생산 공장이다. 조합원인 농민들로부터 생두를 수매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우간다 내수 시장에 공급한다. 그러나, 우간다 국민들은 커피보다 차를 더 선호한다. 우간다를 포함한 케냐, 인도 등 커피를 많이 생산하면서도 커피의 국내 수요가 많지 않은 나라들은 묘하게도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는 역사적 공통점이 있다. 아무래도 커피보다 영국의 차 문화가 오랫동안 뿌리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조합의 연구원(Q-Grader)들과 함께 우간다 커피를 맛봤다. 다양한 풍미를 보여주는 아라비카와 달리 로부스타 표본들은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았다. 대체로 쓴 맛이 강하지만, 살짝 느껴지는 산미와 단맛에 따라 점수가 나뉜다. 아라비카 커피에 스페셜티 등급이 있는 것처럼 특별히 좋은 품질의 로부스타에는 파인 로부스타(Fine Robusta)라는 등급이 부여된다.

우간다 커피 생산자 조합의 커피 제조 공장에서 로부스타 샘플을 맛보고 있다. 대체로 쓴 맛이 강하지만, 높은 등급의 로부스타 커피에서는 부드러운 단맛과 산미가 느껴졌다. 최상기씨 제공
우간다 커피 생산자 조합의 커피 제조 공장에서 로부스타 샘플을 맛보고 있다. 대체로 쓴 맛이 강하지만, 높은 등급의 로부스타 커피에서는 부드러운 단맛과 산미가 느껴졌다. 최상기씨 제공

로부스타가 쓴 이유는 무엇일까. 낮은 품질, 인스턴트와 더불어 로부스타 커피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특징 중 하나는 카페인이다. 물론 클로로겐산과 포타슘이란 성분들도 로부스타의 쓴 맛에 영향을 주지만, 카페인 또한 강한 쓴 맛의 원인이다. 로부스타(1.7~4.0%)에는 아라비카(0.8~1.4%)보다 2~4배가량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다. 카페인 성분이 로부스타의 쓴 맛을 올리고 그로 인해 인스턴트 커피 용도로 로부스타가 주로 사용되니 카페인은 로부스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중독에 가까운 하루 20~30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괴테가 왜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지 친구인 과학자 룽게에게 물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롱게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카페인이라는 유기화합물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카페인처럼 온 지구적 관심을 모으는 물질은 없으리라. 룽게가 이 물질을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카페인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연구 논문은 수도 없이 발표됐고 카페인의 유익, 유해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요즘에는 이런 논쟁보다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필요한 카페인의 양,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의 양에 대한 문제로 넘어간 듯 하다.

커피 생두를 물에 넣고 삼투압 원리로 카페인을 제거하면 디카페인 커피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제거된 하얀색 분말이 카페인이다. 식약처 등 국내ㆍ외 기관에서는 임산부를 제외한 성인들에게 하루 400㎎ 이하의 카페인을 권장하고 있다. 카페인은 비타민처럼 태블릿으로 정제해 판매되기도 하는데 정제 카페인 1알은 200㎎ 정도다. 3알을 먹으면 하루 권장 카페인을 넘게 돼 조금 민감한 사람은 긴장되거나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카페인 분해 능력에 따라 개인간 차이가 있지만, 5알(1g) 정도를 섭취하면 대개 신경계와 순환계에 급성 카페인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제 카페인 50알(10g) 정도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소금과 설탕도 과다 섭취하면 치사량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여서 놀랄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효과 때문에 정제 카페인은 달팽이나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한 천연 농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커피가 카페인을 만들어낸 이유도 해충 구제에 있다. 카페인을 만들어 병충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 꽃은 꿀벌을 중독시켜 계속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카페인은 지용성이면서 수용성인 물질이다.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커피가 물에 담겨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카페인 함량은 늘어난다. 따라서 같은 원두라면 추출시간이 짧은 에스프레소보다 핸드드립 등 브루잉 커피에 카페인이 많다.

콜드브루(더치)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추출시간이나 방법도 다양해서 에스프레소에 비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상온의 물로 추출하기 때문에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커피보다 시간당 카페인 양은 적다. 하지만 장시간 추출하거나, 희석하는 물의 양이 적으면 역시 에스프레소에 비해 카페인이 많을 수 있다. 그래서 콜드브루 커피는 임산부 등 카페인을 피해야 되는 사람들이 마셔도 된다는 말은 오해다.

일반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커피보다 편의점의 캔커피에 훨씬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부분의 커피음료와 커피우유가 로부스타 추출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순수 카페인은 입에 댈 수 없을 만큼 쓰다. 그래서 카페인은 다른 성분들과 함께 로부스타 커피의 쓴맛을 담당한다. 이 쓴 맛을 없애고 달콤한 커피믹스 또는 커피 음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설탕과 커피 크리머(화이트너)가 들어간다.

많은 양의 카페인은 유해하지만, 카페인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적당량의 카페인은 약리작용으로 뇌세포를 자극해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도파민을 분비시켜 가벼운 흥분과 함께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적정한 양을 섭취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얘기다. 그 밖에도 노화를 방지하고 피로 회복과 당뇨 예방 등에도 도움을 준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고기만 먹는 다이어트도 있다고 하니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될 식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날 저녁 우간다 커피협동조합의 초대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함께 자리한 조합 직원들은 대부분 커피 대신 차를 마셨다. 협동조합의 직원들은 모두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다.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 이유가 궁금했다. 로부스타가 주종인 우간다 커피는 카페인이 많아서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프리카의 밤은 어둡고 길다는 대답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카페인으로 넘어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들이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이유는 숙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차를 즐겨온 전통과 기호(嗜好)문화 때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차 소비국이던 터키는 오스만투르크 붕괴 이후 다국적 커피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브릭 커피라는 독특한 커피 문화의 중심국이 됐다. 이처럼 차를 주로 소비해온 우간다에서도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커피 소비가 조금씩 늘고 있고, 앞으로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커피는 문화이고,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선진국의 전유물이던 커피는 21세기 들어 개발도상국을 거쳐 생산국에서의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마, 수년 후에는 우간다 캄팔라 시내에서 지금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커피 전문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우간다 커피 협동조합 농민들의 커피와 숙면에 대한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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