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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한일 쟁점 감추는 공범인데… 일본만 때린다고 해답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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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한일 쟁점 감추는 공범인데… 일본만 때린다고 해답 나오나

입력
2019.12.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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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 ‘황해문화’ㆍ‘역사비평’ 겨울호, 한일 갈등 구조적 배경 조명 

 “韓 식민지배 정당 주장 日 뒤에 美 있었다”… 韓日 학자 이구동성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두=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두=류효진 기자

2019년 올 한 해 내내 우리는 일본과 싸웠다. 제국주의 일본(日帝) 시절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한국인이 당시 자신을 부렸던 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늦었지만 응당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올 7월 수출 통제로 보복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무도(無道)가 한국인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성토는 일제(日製)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정한 광복의 기회라며 차제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제 맞서볼 만한 상대라는 자신감이 차 올랐다.

그런 뒤 세밑. 성탄 전날 한일 정상이 중국 청두(成都)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일본을 움직인 걸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을까. 아니나다를까 올해를 유난히 뜨겁게 달군 한국 외교의 해묵은 현안을 인문학계가 외면하지 않았다. 새얼문화재단이 발간하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와 역사문제연구소 계간지 ‘역사비평’이 겨울호에 각각 한일 간 갈등의 구조적 배경을 조명하는 연말 기획물을 실었는데, 읽고 나면 답답한 결론으로 인도된다. 궁색한 논리를 공박하는 게 힘들지는 않겠지만 일본을 때린다고 해답이 나오겠느냐는 회의 말이다.

한일 갈등의 근원은 일제의 35년간(1910~1945년) 한반도 지배를 둘러싼 양국의 시각 차이다. 물론 한국 정부의 해석은 ‘불법 강점’이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위상’(황해문화)을 쓴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 식민 지배”라는 선언이 지난해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당연히 일본은 반대다. 오타 오사무(太田修)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역사비평에 보낸 ‘한일 청구권 협정 해결 완료론 비판’에서 “패전 후 일본 정부의 인식은 한마디로 ‘식민 지배 정당’론”이라며 △1910년 한국 병합 조약이 적법하게 체결됐다는 ‘식민 지배 적법’론 △식민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근대화’론 △“조선의 독립은 국제법상 단순한 영토 분리의 경우”라는 ‘영토 분리’론 등 3가지로 구성된다고 분석했다. 병합부터 분리까지 식민 지배 시종(始終) 전 과정의 정당화를 일본이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가름이 어렵지는 않다.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 지배의 합법성’ 자체가 허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후 한일 갈등의 구조와 역사, 그리고 2019년’(황해문화)에서 김득중 한국사학회장(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아무리 법의 모양으로 시행됐다 해도 식민 지배를 위한 법은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식민 지배에서는 합법과 불법에 결정적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인지 한일 간에 “1952년 시작된 청구권 교섭과 19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감추는 것이었다”는 것이 오타 교수의 간파다.

일본 정부의 대법원 판결 대응도 억지에 가깝다. 김창록 교수에 따르면 ‘강제동원’은 ‘징용’과 다르다. 징용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제도다. 그러나 원고들의 피해는 징용이 아니라 법적 근거 없이 사람을 끌고 가 일을 시키는 불법행위, 즉 강제동원에 기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임금이나 보상을 넘어선 배상에 대한 것이고 배상은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해석이다. 김창록 교수는 “대법원 해석에 일본이 제대로 반박하려면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 협정 대상’이라고 해야 하지만 아베 정부는 ‘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라고만 주장한다”며 “‘A는 B가 아니다’라는 공격에 ‘C는 B다’라는 식으로 동문서답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당위와 논리의 우열이 선명한데도 승패가 흐릿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에 ‘식민 지배가 피식민 지역을 문명화ㆍ근대화했다’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인식이 투영돼 있어서다. 오타 교수는 “미국 등 연합국 측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추궁될 때는 적대 관계였지만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불문에 부친다는 점에서는 공범 관계였다”며 “청구권 협정의 ‘경제협력’ 방식은 일본 정부가 과거 구미 제국의 식민 지배 처리 방식을 답습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강제동원 배상 청구권 같은 한일 간 쟁점의 봉인으로 관철되는 건 미국의 이익이다. 1950년대 내내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한일관계의 정상화 작업이 1965년 한일 협정으로 결실을 맺게 된 데에는 동북아시아에 한미일 반공전선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강하게 작용했다. 공산주의라는 ‘외부의 적’은 자유 세계 내부 모순을 경시하도록 만들었고, 식민지 경험이라는 ‘흘러간 과거’는 반공 세력 규합이라는 긴급한 과제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한일 협정에 앞서 1951년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전쟁 승자ㆍ패자 간 조약이라기보다는 안보 파트너 간 조약이었다는 게 김득중 회장 얘기다. 그는 “중국 견제가 최우선인 현재 미국의 전략에서는 미일 동맹이 가장 중요한 관계이고 한국은 이 동맹을 원조하는 역할에 머문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 등 국제법에 공백을 만들고 이에 대한 배타적 해석권을 향유해 우방 간 갈등을 봉합하거나 순연하는 게 미국이 패권을 행사해 온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제기한 식민주의 문제는 비단 한일 간 갈등 현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창록 교수는 “한국 법원이 식민지 지배 책임을 미해결 과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권위주의 시대 국가 폭력에 대한 국내 과거 청산 소송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국가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덕분”이라며 “식민지 지배 책임이 오랫동안 봉인돼 있다 한일 대립의 첨예화를 계기로 마침내 다뤄지게 된 세계사적 현안인 만큼 ‘한일 간’이 아니라 ‘한일 모두’의 협력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양국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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