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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확고하고 집요한 고집에 힘 실어주고파”

입력
2020.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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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심사평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 왼쪽부터 이광호 문학평론가, 손보미 소설가, 임현 소설가, 강영숙 소설가, 신수정 문학평론가. 류효진 기자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 왼쪽부터 이광호 문학평론가, 손보미 소설가, 임현 소설가, 강영숙 소설가, 신수정 문학평론가. 류효진 기자

‘고백’은 익숙한 가족서사의 풍경으로 시작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들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은 소설의 구성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백’이 가진 미덕은 ‘촘촘하게 생략된’ 장면들에 있었다. 더욱이 자칫 도식적일 수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과감한 전개와 섬세한 대화들로 생동감 있게 연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닌 관습적인 의미를 전복시키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무이’의 경우는 환상적이고 기이한 사건을 핍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인체에 감염된 ‘곰팡이’라는 설정도 흥미로웠지만, 부재한 연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차분하게 그려지는 인물의 이력이 인상 깊었다. 무심하게 던져 놓은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표현들도 적지 않았는데, “사람일까. 사람이지, 당연히. 어째서 당연히 사람이지?”와 같은 경우가 특히 그랬다. 더구나 이로 인해 앞선 장면들을 다시금 재해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연히 운 좋게 만난 문장만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먼저 언급한 두 작품이 중심에서 비켜나 주로 주변과 공백으로 채워진 서사였다면, ‘전자 시대의 아리아’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놓여 있었다. 특히 소설 속의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과정이 대단히 정교했는데, 단단하게 쌓아올린 이 세계를 허투루 다루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요컨대, 음성신호를 재현해내는 낯선 방식이나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모호하게 처리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변질”과 “왜곡”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상의 세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 간에 오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전자 시대의 아리아’의 높은 밀도는 다른 두 편의 기준에서 보자면 과다한 정보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두 편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었으므로 개별 작품의 단점을 따지는 일은 이후의 심사 과정에서 거의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전자 시대의 아리아’를 선택하게 된 것은 우리가 아직 읽지 않은,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저 확고하고 집요한 고집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여기에 언급한 작품은 고작 세 편이지만 그 세 편을 추리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위로나 용기를 북돋우려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고맙고 미안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맙고, 함께 읽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임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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