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책 낸 황지성ㆍ이현화씨
부모가 못 해준 걸 홀로 해내고
통역 역할하며 세상 헤쳐나와
“남다른 공감능력이 우리 특징”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수어다. 대다수 한국인이 한국수어를 모르듯,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언어, 청각장애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같다. 많은 사람이 절반의 한국에서,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다른 절반의 한국에서 사는 셈이다. 농인 부모의 청인(장애가 없는 일반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는 이 두 세계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 부모가 챙겨주지 못하는 영역을 혼자 헤쳐가면서 부모의 통역사 역할까지 떠맡는다.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농인 부모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던진 세상의 ‘모욕’을 홀로 감당하며 남다른 공감능력을 키우지만 세상은 이들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학자, 인권운동가, 영화감독으로 성장한 코다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린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교양인 발행)를 펴냈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저자 이현화씨는 “코다의 이야기를 공식 기록한 첫 책이다”며 “기쁘고 소중하고 중요한 작업이지만 자기 고백을 털어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황지성씨도 “주변에서 부모님(이 장애인인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코다의 특수성을 설명하려면 내밀한 경험까지 드러내야 해서 민망하고 쑥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공저자 이길보라씨는 네덜란드 유학 중이다.
코다의 삶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부모가 모두 농인인 이현화씨는 한국어와 한국수어를 모어로 경험했다. 부모에게 외국어와 같은, 한국어로 쓰인 가정통신문을 읽고 스스로 부모 몫의 답장을 쓰고 학습 준비물을 챙겼던 초등학교 시절, 부모의 만능 통역사이자 ‘청인 세상으로 연결되는 문’ 역할을 하면서 방황했던 사춘기 시절을 겪었다. 이씨는 “저는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다. 힘든 경험을 방어기제처럼 기억에서 밀어 냈는데 책을 쓰면서 그 기억을 마주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수어통역사로 활동한 그는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수어 사전 편찬사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농인, 어머니가 지체장애인인 황지성씨는 수어를 할 줄 모른다. 전쟁이 발발해 늦은 나이에 농학교에 입학한 아버지는 가혹한 노동을 견디다 학교를 그만뒀고, 식구들과 사용하는 ‘홈사인’으로 의사소통해왔다. 황씨는 “20대 중반까지 남에게 가정사를 말해본 적 없다”고 할 정도로 방황하다 2000년대 초반 장애인 인권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동질감을 얻었고, 장애인 인권운동가·여성 인권연구자로 살았다.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건 이 책의 또 다른 필자인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면서부터다. 황씨는 “영화는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 부모, 청인사회와는 다른 농인사회를 소개한다. 제 아버지는 농인이지만 수어를 모어로 쓰지도 않고 농인사회와 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큰 동질감과 소외감을 같이 느꼈다. 저와 아버지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게 무엇인지 절박하게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현화, 이길보라씨 등이 주축이 된 ‘코다 코리아’에 문을 두드렸다. 2014년 창립한 코다 코리아는 코다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를 일반에 알리는 모임이다. 회원들이 함께 책을 읽고 세미나를 열며 규정한 코다는 ‘수어를 할 줄 알든 모르든 농인의 청인 자녀’다. 이씨는 친척들과의 대화에서 부모가 자주 소외됐던 걸 지켜본 경험을 소개하며 “코다는 대화에서 누군가가 배제되는 현상을 아주 예민하게 포착한다. 소외된 사람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말을 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키는데 그게 잘 안됐을 때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괴로워한다”고 덧붙였다.
황지성씨처럼 수어를 몰라도 코다라면 특유의 공감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황씨는 “코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니 엄청난 해방감이 밀려왔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을 규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면서 해방감을 갖듯이, 이 모임을 통해 해방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제 모임인 ‘코다 인터내셔널’까지 찾아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들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두 세계의 차이’다. 이씨는 “‘예쁘지 않다’란 말을 수어로 옮기면 ‘예쁜 게 없다’가 된다. 청인과 농인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고도 가치판단도 다르다. 한밤 중에 청소기를 쓰는 것, 소리 내며 밥 먹는 것은 농인 입장에서 실례가 아니다. 코다 모임을 통해 저도 농인인 부모에게 청인 중심의 사고로 예의를 갖춰달라고 요구했던 걸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청인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농인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런 식의 배려가 종종 폭력이 된다. 농인, 청인의 차이는 분명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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