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바둑 인생 마감… 전혀 다른 길서 새 도전할 듯
이세돌 9단 집안은 바둑 가족으로 유명하다. 1995년 전남 신안 비금도 고향집에서 촬영한 가족사진.(뒷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박양례씨, 아버지 고 이수오 아마 5단, 둘째 누나 이세나 아마 6단, 큰형 이상훈 9단 , 작은형 이차돌 아마 5단, 이세돌 9단. 한국기원 제공

‘괴짜, 마왕, 쎈돌, 불패소년, 야생마.’

분명한 색깔과 날렵한 행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세돌(36) 9단의 별명이다. 그는 2016년 인공지능(AI)과의 바둑 대결에 인간 대표로 나서, 정석이나 족보에도 없는 ‘깜짝수’로 승리를 거머쥐며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사실 그의 삶도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었다. NHN의 AI인 한돌과의 대국을 끝으로 25년 프로바둑 생활을 마무리한 이 9단의 반상(盤上) 인생을 복기했다.

이세돌 9단이 1991년 열렸던 한ㆍ중ㆍ일 국가 바둑 교류전에 참가해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미생(未生), 떡잎부터 달랐다

이 9단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태생이다. 이수오 아마 5단과 박양례씨 사이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세상에 나왔다. 막둥이의 ‘막춤’ 재롱은 당시 농사에 지쳤던 부친에게 큰 웃음을 선물하곤 했다. 바둑 입문은 부친의 권유로 5세 때 이뤄졌다. 그는 바둑돌을 잡고 2년 만에 아마 5단인 아버지를 이겼다. ‘떡잎이 다르다’고 여긴 부친은 그를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전국 대회에 출전시켰다. 주변에선 모두 “돈만 버린다”며 혀를 찼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어린 나이에 외딴 섬에서 ‘기경중묘’와 ‘현현기경’, ‘발양론’ 등 성인도 어려운 바둑의 고전을 잇따라 독파한 아들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 바둑 패밀리인 이 9단의 가족 가운데서도 유독 부친이 막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선 까닭이다. 이 9단의 큰 형은 지난해까지 프로팀 감독을 맡았던 이상훈 9단이고 누나는 ‘월간바둑’ 편집장인 이세나 아마 6단이다. 이 9단은 “아버지의 굳은 의지가 없었다면 내 바둑은 비금도에서 일찌감치 좋은 취미쯤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반상 초반 포석은 부친으로부터 잉태된 셈이었다.

지난 2000년말 열렸던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당시 이세돌(오른쪽) 3단이 류재형 4단과 결승전을 벌이고 있다. 이 3단은 이 대회에서 우승,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한국기원 제공

◇반생(半生), 천재적 재능 속 승단대회 거부 파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각종 대회 우승으로 재능을 확인한 이 9단은 9세 때 서울 유학 길에 올랐다. 이상훈 9단의 보호 아래 체계적인 교육이 더해지며 불과 12세에 프로입단(1995년)에 성공했다. 하지만 시련도 찾아왔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형의 군 입대는 어린 그에겐 큰 부담이었다. 방황은 시작됐고 정신적 부담에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 탈이 난 기관지도 방치했다. 현재 이 9단의 갈라지는 듯한 쉰 목소리는 당시 후유증에서 비롯됐다. 버팀목이었던 부친마저 98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부친의 사망은 역설적으로 그의 내재된 승부욕을 자극했다.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그는 그 해 32연승까지 내달렸다. 2002년엔 ‘제15회 후지스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첫 타이틀까지 차지, 상종가를 쳤다. 안정궤도로 안착하는 듯 보였지만 이 9단은 또 다시 충돌했다. 2002년 이 9단은 대국료도 없이 매년 10판 대국을 기본으로 한 한국기원의 승단 규정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의 반란에 한국기원은 결국 규칙 개정으로 물러났다. 이 9단은 이어 2009년 기보 저작권료 지급 논란 속에 휴직계까지 제출하고 잠적했다. 기원측과 대화 끝에 2010년1월 복귀했지만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이세돌(오른쪽) 9단이 입단동기로 절친인 조한승9단과 앙증맞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완생(完生), 中 구리 9단과 10번기서 ‘완승’

우여곡절 끝에 반상으로 복귀한 이 9단은 24연승 행진으로 화답했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바둑 부문에 출전, 금메달을 가져왔다. 이 9단의 반상스토리에서 정점은 동갑내기로 필생의 라이벌인 중국의 구리(古力) 9단과 10억원의 상금(우승 8억5,000만원)을 놓고 2014년 벌인 10번기다. 이 맞대결에서 6승2패로 이긴 이 9단은 은퇴 직전까지 국내외에서 총 50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확했다. 누적 상금은 1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거침없이 달리던 이 9단을 멈춰 세운 건 사람이 아닌 AI였다. 2016년 구글 AI인 ‘알파고’와의 맞대결에서 이 9단은 1승4패로 패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전 세계가 박수를 보냈지만 현역 은퇴의 빌미로도 작용했다. 이 9단은 최근 한 방송에서 “‘최고 중 한 사람’이란 자부심이 있었는데 AI가 결정타를 날렸다”며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바둑을 계속 하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세돌(맨 왼쪽에서 두 번재) 9단이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대표로 참가, 금메달을 딴 이후 태극기를 들고 이창호9단(여섯 번째) 등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여생(餘生), 정치권 ‘러브콜’ 사양

반상을 떠난 이 9단의 은퇴 이후 행보도 관심사다. 일각에서 제기된 ‘정치권 진출설’은 사실 무근이다. 이 9단은 “나이도 어리지만 정치와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일부에서 나온 ‘후진 양성’ 관측 또한 현실성이 희박하다. 후진 양성에 필수적인 한국기원과의 관계가 불편하다. 현재 이 9단은 중국 베이징에 설립했던 바둑학교에도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전혀 다른 분야로의 진출이 점쳐지고 있다. 이 9단은 실제로 2018년 가상화폐 분야 등에서 폭넓게 사용 중인 블록체인 사업에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이 9단은 한돌과의 대국 직후 “예전엔 바둑이 인생 전부였다면 이제는 인생의 전환점이나 반환점이 된 셈”이라며 “앞으로 다른 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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