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통가와 피지의 남쪽 사이에 위치한 미네르바 환초. 통가와 피지는 저마다의 이유로 미네르바의 영유권이 자국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오세아니아 대륙 서쪽, 통가와 피지 사이 남태평양 미네르바 환초에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엮여 있다. 바다 한가운데 산호초가 모여 있는 곳일 뿐이었던 이곳은 1972년 1월 미네르바 공화국 사건으로 주목 받게 됐다. 얕은 수심 탓에 정부와 어민들의 외면을 받던 이곳을 눈여겨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 마이클 올리버는 미네르바 환초에 세금도 복지도 모두 사라진 자유지상주의 사회를 건설할 계획을 꾸몄다. 프로젝트를 위한 투자 재단이 구성되고 산호초에 모래를 부어 인공섬을 만든 끝에 ‘미니 국가’ 미네르바 공화국이 환초 위에 깃발을 올렸다.

하지만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접국 통가가 훼방을 놨다. 통가는 같은 해 6월 군을 동원해 올리버와 그의 동료들을 몰아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네르바 환초는 공식적으로 통가의 영유권에 놓였다. 통가의 영유권 주장에 피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피지는 2005년 통가의 미네르바 환초 영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국제 해사 당국에 제소했다. 주변 해역에 있는 해양 자원이 이유였다.

양국의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 근거에 기초한다. 통가는 1887년 자국의 영역을 규정한 통가 선언과 1972년 미네르바 공화국 점령 이전까지 영유권을 주장하던 국가가 없었던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피지의 근거는 그간 발간됐던 지도들이다. 태평양 제도 포럼(PIFS) 등에서 발행한 해양 지도에 미네르바 환초가 피지의 영역으로 기록돼 있고, 그동안 이웃 국가들이 이 지도를 인정해 왔다고 피지 외무부는 주장하고 있다.

2011년에는 통가와 피지 사이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간 아찔한 사건도 있었다. 피지 쿠데타가 문제였다. 초세이아 보렝게 므베이니마라마 피지 대통령 행정부를 전복하려다 실패하고 도피한 테비타 마라 대령을 통가가 보호해 주면서 양국이 대립한 것이다. 게다가 피지 해군과 이에 대치하는 통가 해군 사이에 미네르바 환초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근 해역에서 양국 군이 맞섰다. 다행히 무력 충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양국 정부와 군은 서로에게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환초 문제는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양국 외무부는 2011년 이후 별다른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국제사법재판소 등 분쟁 해결 국제 기구에서도 관련 사안을 찾아볼 수 없다. 2014년에는 통가 정부 측이 피지 정부에 통가족(族)과 혈연으로 연결된 라우 제도를 받고 미네르바 환초를 넘기는 제안을 꺼냈지만 무위에 그쳤다. 하지만 언제라도 양국의 분쟁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미네르바 환초 인근 해양 자원이 분쟁 재개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차승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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