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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의자 괴롭힘 3단계

입력
2019.12.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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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괴롭히는 일은 참으로 쉽다. 의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반면 괴롭힘을 깨닫기는 좀 더 어렵다. 피해자는 종종, 피해를 깨달을 만큼 예민한 동시에 과민하지 않을 것을 요구 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타인을 괴롭히는 일은 참으로 쉽다. 의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반면 괴롭힘을 깨닫기는 좀 더 어렵다. 피해자는 종종, 피해를 깨달을 만큼 예민한 동시에 과민하지 않을 것을 요구 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법령에 도입된 이후, 직장 내에서의 어려움에 관한 문의가 두루 늘었다. 여러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는 노동인권운동 ‘직장갑질 119’에 상담이 폭주한 것은 물론이고, 기관이나 기업, 근로자 등 현장의 수많은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질의를 한다.

상담을 하며 나는 다소 안타까운 경향을 발견했다. “내가 당한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는 질문 이전에, “내가 피해를 본 것 같은데 이것도 피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가” “내가 예민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 많다는 점이다. 즉, 주관적인 피해감에 확신이 없는 근로자가 많다.

이는 물론 근로자의 잘못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념적으로는 우위성, 업무 관련성, 정신적ㆍ신체적 피해 혹은 근로환경 악화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에게 근로환경의 악화와 생활환경의 악화는 사실 그다지 다른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일상이 연속적인 이상, 현실에서의 경계가 애당초 불명확한 것이다.

이 기준은 어떤 경우에는 판단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상사가 업무상 꼭 필요하다고 바득바득 우기며 매주 금요일마다 새벽 2시에 이성인 하급자를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 불러낸 다음, 같이 라면이나 먹자고 한다면 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우위성이 있는 업무 행위를 빙자한 근로환경 악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교묘한 괴롭힘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내가 예로 많이 소개하는 것은 소위 ‘의자 케이스’다. 상담을 하다 보니 사무직 의자 문제가 하도 많아 나 혼자 유형화를 했다.

간단하게는 의자 밀기가 있다. 대부분 사무용 의자에는 바퀴가 달려 있는데, 피해자의 의자를 제자리가 아닌 곳으로 밀어 놓는 것이다. 출근해 보면 내 의자가 탕비실 앞에 있고, 밥 먹고 오면 사무실 저쪽에 있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면 애매하게 또 옮겨져 있는 식이다. 당하는 사람은 너무나 괴롭지만, 바퀴가 있는 의자는 어쩌다 보면 굴러다닐 수도 있다. 의자를 도로 가져다 놓기만 하면 일단 회복도 된다. 한 사람이 했는지 두 사람이 했는지도 잘 알 수 없다. 정말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2단계는 의자 당기기다. 사람이 앉아 있는 사무용 의자의 등판을 뒤에서 갑자기 당기는 것이다. 앉아 있던 사람은 당연히 놀라고, 몸의 균형이 깨진다. 하지만 대체로 그 정도로 사람이 다치지는 않는다. 당황스럽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어 고의적이다 싶으면 앉아 있는 내내 다른 사람에게 등을 보이고 있기가 불안해진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항의를 해도, “몸에 손댄 것도 아니고, 부르려고 의자를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라고 하면 또 그에 맞서 더 따지기는 쉽지 않다.

3단계는 의자 팔걸이 올리기다. 회의실 같은 곳에서 옆에 앉은 사람의 의자의 팔걸이를 위로 갑자기 들면, 의자가 확 넘어간다. 의자에 따라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사람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경우도 있고, 의자와 사람이 한꺼번에 뒤로 들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자칫하면 크게 다치지만, 전혀 안 다칠 수도 있다. 이 의자 팔걸이 들기는 막상 해 보면 성인이 앉은 상태에서도 3초면 가능하다. 주위 누구도 못 보고, 혼자 벌러덩 나자빠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일은 참으로 쉽다. 의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반면 괴롭힘을 깨닫기는 좀 더 어렵다. 피해자는 종종, 피해를 깨달을 만큼 예민한 동시에 과민하지 않을 것을 요구 받는다. 피해당사자조차도 예민과 과민 사이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변호사에게 묻는다. 의자가 자꾸 움직이는데, 제가 이상한 걸까요.

의자는 혼자 걸어다닐 수 없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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