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디자이너에서 요리연구가로 … ‘마나님 레시피’ 허식 대표
“아줌마, 여기 떡국 한 그릇이요.”(손님) “죄송합니다. 여기는 아줌마 없습니다. 나가 주세요.”(사장)
“여기 주문이요.”(손님) “주문서는 식탁 위에 있어요. 적어서 올려 두세요.”(사장)
“맛있어요?”(사장) “네.”(손님) “단답형이면 바로 종로 경찰서로 데려갑니다.”(사장)
주객(主客)이 바뀌었다. 식당 사장의 불호령이 밥 한 끼 먹으러 온 손님을 쉴새 없이 난타한다.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쫓겨나고, 주문서 달라 했다가 구박받는다. 다 먹은 그릇을 포갰다가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고, 음식 품평을 제대로 못해도 꾸지람을 듣는다. 이쯤 되면 불편함을 넘어서서 오기가 발동한다. ‘얼마나 맛있길래.’
뚝딱 차려낸 밥상은 정갈하다. 야채로 우려낸 육수로 삶은 국내산 삼겹살을 울릉도산 명이 장아찌와 함께 싸 먹는 ‘싸실보쌈’. 호박과 새송이버섯, 가죽 장아찌와 들기름을 넣어 맵지 않고 고소한 ‘방실비빔밥’. 쫄깃하고 보드라운 국내산 쌀로 만든 떡과 안동 한우 육수를 넣은 ‘따실떡국’. 장아찌로 만든 소스가 감칠맛을 더해 주는 ‘홍실국수’. 직접 만든 치즈와 다양한 채소를 버무린 ‘수제치즈 파스타’. 이름만 들어봐도 새로운 맛의 세계다.
이 세계의 창조주는 2008년부터 서울 안국동에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요리를 만들어 왔다고 자부하는 ‘마나님 레시피’ 허식(66) 대표다. 허 대표는 “장난 하나 치지 않고 정직한 밥을 만든다는 당당함이 있다”라며 “전부 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귀한 음식이어서 이를 알아주고, 먹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밥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투박하고 까칠한 주인장에도 불구하고 식당에 손님이 넘쳐나는 이유다.
◇니트 디자이너에서 요리연구가로
허 대표는 원래 니트 디자이너였다. 대구에서 나서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무렵에 우연히 만난 일본의 유명한 니트 디자이너 덕에 디자인에 빠져들었다.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자신 있었던 그는 그 뒤 30여년 동안 니트 디자인을 그려 내고 제품을 만들었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강연도 했다. ‘내 손으로 만드는 재미’에 허 대표는 밤새도록 디자인하고 하루 종일 뜨개질을 했다. 지금도 식당 곳곳에 그가 직접 짠 마크라메(실을 짜거나 떠서 매듭짓는 직물 과정) 작품들이 걸려 있다. 양 갈래로 땋은 허 대표의 백발 위에 얹힌 니트 모자 또한 자기 손으로 짠 것이다.
니트에 바친 인생이었으니, 요리를 배운 적은 없다. 식당 일도 모른다. 요리에 관심은 많았다. 허 대표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집안 덕에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고, 요리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다”고 했다. 중학생 때 이미 요리 강습회 같은 곳에서 어깨 너머로 귀동냥을 했고, 사춘기 시절에도 옷이나 장신구보다 솥과 오븐이 더 탐났다. 여러 재료를 써서 뭔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 뿌듯했다. 허 대표는 “친구들이 ‘이거 어떻게 한 거냐, 너무 맛있다’고 하면, 그 재미에 더 신나서 새 요리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요리사를 꿈꾸진 않았다. 음식을 건강하게 차려 내고, 맛있게 먹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다 2005년, 요리가 업(業)이 됐다. 서울 북촌 인근 절에 사찰음식을 배우러 다녔는데, 문득 ‘여기쯤에 요리할 만한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 사이 골목을 다니다 장독이라도 눈에 띄면 ‘저기 장아찌를 담그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마침 비어 있는 가게 하나가 있었다. 그 길로 계약을 했다. 운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장아찌 제조ㆍ판매점인 ‘계동 마나님’이다. 애초부터 식당 차려 돈 벌 생각은 없었다. 산지에서 직접 구해 온 다양한 재료로 장아찌를 담그면서 밤낮으로 요리법 그 자체만 연구했다. 허 대표는 “요즘 사람들은 장아찌를 짜다고 멀리하는데, 짜지 않고 간이 맞으면서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비법을 만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구했다”고 말했다.
명이, 가죽, 콩 등 산속에서 채취한 나물들로 만든 그의 특제 장아찌가 그 결과물이다. 입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의 장아찌를 찾기 시작했다. 허 대표는 북촌의 명사가 됐다. 개그맨 전유성도 그의 단골이다.
식당도 그렇게 시작됐다. 허 대표는 “장아찌를 사면서 밥 한 그릇 달라고 해서는 가게에 앉아 뚝딱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다들 식당을 차리라고 했다”며 “내 요리를 알아봐주시는 분들 덕에 내 요리를 선보일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갓난아이부터 외국 관광객과도 친구
‘마나님 레시피’는 그렇게 2008년 삼청동 골목 안에서 문을 열었다. 세련된 갤러리와 식당들이 줄지은 삼청동에서 14석 정도 갖춘 작은 가게다. 점심에는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늘 찾는 이들로 붐빈다. 화학조미료나 방부제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식단 덕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부터 인근 회사원, 외국인 관광객까지 남녀ㆍ국적ㆍ연령 모두 불문이다.
허 대표가 즐겨 듣는 프랑스 가수 파트리샤 카스의 노래가 식당에 울리자 프랑스 관광객들이 ‘떼창’을 하는가 하면, 배우 장근석이 찾은 가게라는 소식에 일본 팬들도 몰려와 허 대표의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배우 임수정도 단골이다. 허 대표는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고, 외국인들도 책자 하나 끼고 이 작은 가게까지 찾아오더라”라며 “굳이 여행을 안 가도 이 작은 가게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찾으면서 육류 등을 뺀 크림 파스타, 녹두찰밥, 비빔밥과 그린커리 등 비건 메뉴도 새로 개발했다. 그는 “내가 감당할 만큼, 감당할 수 있는 손님만 먹이는 게 내 식당 철학”이라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족하는 손님들을 보는 데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4년 만에 가게를 다시 찾은 손님에게서 ‘음식 맛이 그대로다’란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감동스러웠다.
식당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얌전하게 요리만 했는데 피드백이 오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자꾸 허 대표 활동의 외연이 넓어졌다. 허 대표는 “요리법에 관심 있는 이들과 만찬도 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면 품평회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손님이 늘면서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웬만한 외국어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식당 일을 돕고 배우겠다는, 제자들도 나타났다. 그 덕에 장아찌에서 시작한 요리는 밤 잼, 깻잎 페스토, 쑥 파스타 드레싱 등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갔다.
최근에는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허 대표는 “이런 걸 꼭 먹어 봤으면 싶은 요리법을 개발했는데, 아는 사람들끼리만 먹는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며 “어차피 만드는 거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건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는 “장난쳐서 돈 버는 게 아니라,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정직하고 투명하게, 당당하게, 손님에게 큰 소리 칠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 그게 내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여기, 지금’이 나의 모토
아무리 요리가 즐겁다지만 나이와 체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니트 디자인에 30여년간 열정을 쏟아부었다면 요리는 개인적인,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겨 둘 법도 하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자기 관리하기에도 모자랄 나이 아니냐는 질문에 허 대표는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을 찾았으나, 이 일은 내게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從心)’인 70세를 바라보는 그는 “나의 모토는 ‘여기, 지금(Here and Now)’ 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돈 벌면 이거 하고 저거 하고, 계획 세우는 건 젊었을 때나 하는 거예요. 이 나이쯤 되면요,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아요. 그러니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죠.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자는 게 내 모토에요. 나한테는 서로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맛있는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게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거에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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