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만나고 다니는 중생은 이제 끊임없이 노동하는 기계인간들이다. 예수는 자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고백하는 인간에게 좌절한다. 마호메트는 자살폭탄 조끼를 입고 스스로를 내던지는 무슬림 앞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공자는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대신 불행에 낯빛이 찌든 군자를 보고 의문에 휩싸인다.
세상사 다 통달했을 것 같은 4대 성인조차 “우주의 끝엔 대체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했을 그때, 그 해답을 가져다 준 이는 의외로 프로그레시스 록 밴드 ‘호크윈드’였다. 1973년 앨범 ‘스페이스 리추얼’에서 그들은 “우주의 경계 너머에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무슨 얘기인가 싶은데, 백민석은 신작 소설집 ‘버스킹!’에서 단연 그러하다고 한다. 1990년대 ‘뉴웨이브의 아이콘’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으며 전위적이고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그가 이번엔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고 왔다. “집에 있을 때나 외출했을 때나 늘 음악을 들었다”던 백민석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접한 버스킹 공연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들로 이번 책을 채웠다.
그래서 이번 책은 구성 자체가 독특하다. 16개 꼭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16개 꼭지는 16개의 짧은 단편에다 각 단편에 맞물리는 음악에 대한 설명 16개가 짝을 이루는 방식이다.
갈수록 끔찍해지는 사랑을 좀비에 비유한 단편 소설 ‘도망쳐라, 사랑이 쫓아온다’ 뒤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약에 취한 상태로 불렀다던 여가수 그레이스 슬릭의 1960년대 곡 ‘화이트 래빗’을 설명한다. 헤비메탈 밴드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던 슬레이어의 음악은 동성애자 파티를 급습하는 상남자들의 메인 테마로 사용된다.
백민석다운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그려진 뒤 음악에 대한 작가의 마니아적 지식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식이라, 음악은 개별 소설의 주제곡이면서 소재다. 매 소설마다 작가가 직접 찍은 버스커들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그냥 소설집이기보다 록 음악과 버스킹(거리공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소설가가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설을 음악에 바친, 헌사들처럼 읽힌다.
뉴웨이브의 아이콘 백민석은 2003년 절필했다. 소설 쓰기도, 읽기도 그만뒀던 작가는 문학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다 2013년 복귀했다. 그 뒤 백민석은 멈췄던 숨을 한 번에 몰아 쉬기라도 하듯 다양한 행보를 선보이는 중이다.
음악과 소설을 결합시킨 이번 책도 그 중 하나다. 최근에는 카메라를 산 기념으로 책날개에 들어갈 작가들 프로필 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는, 개인적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예술의 발전은 대중적 인기나 밀리언셀러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발전은 혁신적인 예술가의 등장으로 이뤄진다”는 소설 속 문장은, 백민석 스스로 그러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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