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보다 몸집 작아도 기술로 넘어뜨려 씨름의 진짜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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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보다 몸집 작아도 기술로 넘어뜨려 씨름의 진짜 매력이죠”

입력
2019.1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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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를] 20대 여성들에 인기… 수업 체험기 

본보 이주현 인턴기자가 3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 내 씨름장에서 씨름을 배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네가?”

씨름 수업을 듣는다 했을 때 지인들의 대답은 하나같았다. 체격 좋고 힘센 사람들이 하는 운동을 50㎏도 안 되는 운동 풋내기가 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 섞인 반응이다. 나 역시 수업을 배우러 가는 길까지 설렘보단 두려움이 컸다.

‘큰 사람들’만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씨름이 최근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대중문화로서 씨름의 역사는 과거 1990년대 브라운관에서 사실상 멈춘 상태였지만, 씨름의 매력이 서서히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씨름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3일 경기 용인시의 용인대 씨름장을 찾았다.

본보 이주현 인턴기자가 3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 내 씨름장에서 씨름을 배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공성배 용인대 교수가 3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에서 자신의 선수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씨름은 몸집이 크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설명을 전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반갑게 맞아준 공성배 용인대 격기지도학과 교수는 몸이 작아서 걱정이란 말에 대뜸 자신의 현역 시절 사진을 먼저 꺼내 보였다. “보세요, 저 ‘몸짱’이었죠?”

1990년 LG증권 씨름단에 입단, 선수로 활약했던 공 교수는 “살을 찌워야 씨름을 잘할 수 있다는 건 선수들 가운데서도 천하장사급 얘기”라며 “씨름은 오히려 다이어트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그는 “씨름은 전신근육을 사용하는 스포츠라 꾸준히 하면 운동효과가 상당하다”며 “덩치가 작은 사람들이 맞붙을 때 기술이 돋보여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20대 학생들은 대체로 건강미로 무장했다. 함께 수업에 참여한 16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인 8명이 여학생이었다. 공 교수는 “5년 전쯤에는 씨름 수업을 듣는 여학생 비율이 5~10%정도였는데, 최근엔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씨름의 대중화와 함께, 입시 체육에도 씨름이 포함되다 보니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졌다는 게 공 교수 설명이다.

본보 이주현(왼쪽) 인턴기자가 3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 내 씨름장에서 씨름을 배우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본격적으로 돌입한 씨름 수업은 몸풀기부터 만만치 않았다. 강도 높은 스트레칭에 여기 저기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플랭크, 스쿼트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몸의 근육 구석구석을 풀어야 했다. 모래판에서 벌어지는 씨름은 무도 가운데 부상 염려가 가장 적다지만, 전신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몸을 풀어줘야 한단다.

체육관의 차가웠던 공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샅바를 맨 뒤 인사를 시작으로 기본자세를 먼저 배웠다. 양 발을 편한 어깨 넓이로 벌린 후 오른 발을 왼발보다 한 발 앞에 두는 것이 씨름의 기본 자세다. 오른발에 약 70% 정도의 힘을 실어 지탱한 뒤 왼발을 앞뒤로 움직이는 게 기본이라고 한다. 살짝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 자세까지는 비교적 수월했다.

기본 동작은 크게 5가지다. 앞무릎 치기, 오금 당기기, 안다리 걸기, 밭다리 걸기, 들배지기 등 동작과 기술만으로 상대방이 넘어지는 메커니즘을 익혔다. 힘을 거의 싣지 않아도 동작 하나에 의해 상대방이 넘어지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힘으로 버티더라도 상대가 제대로 된 기술을 활용하면 ‘훌러덩’ 넘어가기 일쑤였다.

가장 기본적인 손기술 앞무릎 치기를 먼저 배웠다. 기본 자세에서 오른손을 뻗어 상대방의 반대편 무릎을 치니 단번에 넘어졌다. 이렇게 쉽게 넘어뜨릴 수 있다니. 씨름은 몸과 다리로만 싸우는 운동이라는 편견도 깨졌다. 또 다른 손기술인 오금당기기는 무릎 바깥쪽을 치는 앞무릎 치기와 달리 무릎 안쪽을 잡는다. 이 기술 역시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 않다.

내가 건 기술에 상대가 넘어지니 흥미가 붙었다. 나를 새로 발견한 느낌이랄까. 기세를 몰아 다리 기술에 들어갔다. 안다리와 밭다리 기술은 중심을 잡고 있던 오른발로 상대방의 다리 안쪽을 파고들거나 바깥에서 걸어 넘어뜨리면 된다. 다리 공격을 할 때는 자신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나 역시 안다리, 밭다리를 연달아 시도했지만 제대로 걸리지 못하니 넘어지는 건 내 몸뚱이였다. 아프진 않았지만 어깨에 날개를 달았던 자신감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마지막으로 배운 들배지기는 씨름 기술의 꽃이란다. 말 그대로, 상대방을 바짝 당겨 들어올려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힘과 요령이 달리니 쉽지 않았다.

본보 이주현 인턴기자가 3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 내 씨름장에서 씨름을 배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기본 기술을 배운 뒤 본격 겨루기를 시작했다. 비슷한 체격의 친구들과 마주했다. 모래판 위에 자비는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려 했으나 씨름 선배들인 상대방의 기술에 몇 초도 못 가 넘어졌다. 허망함에 입가에 달라붙은 모래가 씁쓸했다. 하지만 ‘힘 대 힘’이 아닌, ‘기술 대 기술’의 겨루기라는 매력을 몸소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4학년 이나라(23)양은 “체구가 작은 사람들도 여러 가지 기술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다”며 “직접 경기에 임할 때도 순간적으로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어떻게 대처할까 수를 읽는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양은 “직접 몸을 맞대고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안 좋던 분위기도 금세 좋아진다”며 “상대방과 스킨십이 있을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 수업 전에 감정이 상했던 친구와도 샅바 잡고 엎어 치고 메치다 보면 저절로 좋은 감정이 들게 된다”고 씨름의 또 다른 매력을 설파했다.

본보 이주현 인턴기자가 3일 오후 경기 용인시 용인대학교 내 씨름장에서 씨름을 배우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공 교수는 씨름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금, 씨름계에서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마케팅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창 씨름이 잘 나갈 적에 체중이 적은 선수들이 몸집 큰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 몸을 많이 불렸고, 그러면서 기술 씨름이 사라지고 밀어치기 씨름만 나와 대중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했다”고 진단하면서 “이제 제도적 지원과 스타마케팅이 병행돼야 씨름의 인기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용인=이주현 인턴기자

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용인대학교. 박형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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