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서비스 ‘올빼미 체험’]
24시간 카페 밤 늦도록 북적, 야식 배달기사 자정 넘어 더 분주
새벽 심야버스 야근자로 만석, 오전 6시 문 앞엔 식품 배달원이
심야영업 규제 철폐 20년… ‘2급 발암물질’ 야간노동 극대화
대한민국에서 밤은 더 이상 휴식 시간이 아니다. 공공분야든 민간이든 24시간 내내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밤을 가르는 ‘올빼미 버스’는 오전 5시까지 서울 전역을 누비다가 새벽 첫차와 교대하고, 스마트폰 호출만 하면 곧장 택시가 도착하는 세상. 애플리케이션(앱)만 켜면 치킨, 족발 등 온갖 야식(夜食)을 주식(晝食)처럼 먹을 수도 있다. 대학 중앙도서관은 24시간 열려있고, 그곳을 운영하기 위한 냉난방 설비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50m마다 보이는 편의점 간판과 밤에도 꺼지지 않는 TV프로그램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한다.
밤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야간 노동자다. 이들이 있어 밤은 생산을 위한 시간으로 탈바꿈된다. 조너선 크레리는 저서 ‘24/7 잠의 종말’에서 “24시간 사회가 지속적인 노동과 소비를 위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고, 여기에 맞물려 돌아갈 인간형을 만들고 있다. 밤은 ‘자연적 장벽’처럼 여겨졌지만, 자본은 시간의 외연을 확대해 하루의 모든 시간을 생산 가능한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밤 시간에 노동을 투입할 수 없는 것을 자연 섭리로 받아들였지만, 자본과 시장은 시간의 성격을 해체하면서까지 이윤을 극대화했다.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도착하는 식재료 ‘새벽 배송’, 낮에 주문한 서적이 심야에 배송되는 ‘당일 배송’, 새벽에도 언제든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 하루 종일 열려 있는 대학가 유료 스터디룸은 소비자 편익이라는 미명 뒤에 숨은 ‘24시간 풀 가동 사회’의 단면이다. 밤에 일하는 부모의 아이들을 위해 세계 최초 ‘24시간 어린이집’이 만들어진 것은 가정과 육아의 형태까지 바꿔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 2위(2016년 기준). 3명 중 1명이 과로(2018년 한국은행 통계)에 시달릴 정도로 장시간 노동이 고질적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이제는 야간 노동까지 노동환경을 악화하는데 가세한 형국이다. 1998년 심야영업규제 철폐로 사람과 자본이 몰린 서울은 무방비로 ‘불야성(不夜城)’의 도시가 됐다. 그러나 그 동안 24시간 사회에 대한 논의는 소비자의 자유와 편의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이다.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야간 노동의 실태는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는 지난 4일 오후 9시부터 5일 오전 6시까지 밤 시간 동안 소비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나 소비가 가능한 지 체험해봤다. 심야 소비생활을 가능하게 만들며 서울의 밤을 지탱하는 이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당신이 잠든 동안에’ 일하는 노동자
12월 4일 오후 9시 : 서울 강남역 프랜차이즈 카페
서울 강남역 12번 출구 인근의 프랜차이즈 카페. 상호 옆에 ‘24h(24시간)’ 푯말은 이날 유달리 반짝인다. 저녁시간을 넘긴 밤이었지만, 지하 1층과 지상 1층 카페엔 얼핏 봐도 100명은 넘는 이들이 노트북을 끼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손님 대부분은 2030 세대.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종종 시험공부를 하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오후 10시가 넘도록 새로 온 손님이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카페는 만석이다. 안에서 왁자지껄한 소리만 들으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카페는 활기가 넘쳤다.
손님들이 전부는 아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한다는 20대 여성 직원은 손님 접대와 매장 정돈을 함께 하고 있었다. 양손 가득 쓰레기 봉지를 들고, 테이블 위에 쌓인 컵을 수거하기도 했다. 밤을 지키는 직원이 있어 카페의 24시간 푯말은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한가한 때인 오전 3시가 되면 그나마 청소 대행업체 직원이 도착해 매장 구석구석을 치우기 때문에 수고를 덜 수 있다. 물론 청소하는 이도 야간 노동자다.
오후 11시30분: 허기 채우고자 24시간 분식점
‘배달의 민족’ ‘띵동!’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인데도 강남역 인근 분식점에는 3분에 한번 꼴로 배달 호출이 울렸다. 초저녁 바쁜 장사를 끝내고 손님이 없는 야심한 때였지만, 식사를 하려던 중년 여성 종업원 4명은 밥 숟가락을 떠서 겨우 입에 넣고는, 만두를 포장하고 급하게 김밥을 쌌다. 주문하려던 기자도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참치김밥과 라면을 주문했다.
24시간 배달 앱을 이용한 주문이 늘면서 음식점에서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예전엔 청소하고 간간히 식당에 들르는 손님을 상대하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수시로 배달주문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평소에도 배달 앱 종류가 3가지나 돼서 알람 소리에 정신이 없는데, 이날은 ‘배달료 할인 이벤트’가 열려 주문이 특히 밀려들었다. 식당 밖엔 밤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실어 나를 배달대행 기사들이 헬멧을 쓰고 줄지어 기다렸다.
3년 전부터 이 식당에서 야간 노동을 해온 김모(48)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2시간이다. 1주일에 네 차례 경기 안산시에서 강남역까지 출근한다는 김씨는 귀갓길에는 꼬박꼬박 사우나를 들른다. 밤낮이 바뀐 생활은 김씨의 몸을 고되게 했고, 사우나라도 하지 않으면 온전히 잠을 청할 수 없게 됐다. 오전 9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면 시꺼먼 창문 커튼을 치고 바깥세상과 이별한다. 남들은 한창 일할 시간대지만, 김씨의 방은 또 다른 밤일 뿐이다. 김씨에게 허락된 수면 시간은 5시간뿐. 그에게 밤은 밤이요, 낮도 밤일 뿐이다. “밤은 자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낮에 자려니까 처음엔 적응이 안돼 하루에 두 시간 겨우 눈을 붙였어요. 그랬더니 면역력이 굉장히 떨어지더라고요. 낮에 잠만 자는데, 늘 잠이 부족해요.”
12월 5일 오전 1시: 잠 깨기 위해 편의점
잠을 쫓기 위해 카페인 음료를 사러 인근 편의점으로 향했다.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던 남성 직원이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그는 카운터에 음료 캔을 내려 놓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비몽사몽 바코드를 찍었다. 계산을 끝내고 다시 ‘졸음 모드’로 들어가려는 그에게 야간 노동 때문에 힘든 게 없는지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피곤해도 밤엔 손님이 없어서 좋다. 야간 수당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해 불만”이라고 말했다.
시급의 1.5배 수준인 야간 수당은 상시 근로자 수(1일 평균 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지급할 의무가 없다. 직영 편의점은 본사 직원이 포함되므로 당연히 야간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가맹 편의점의 경우 1일 3교대로 운용하더라도 상시 근로자수가 5명을 넘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야간 수당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지난해 전국의 편의점 가맹점 수가 4만개가 넘는다니, 야간 노동자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편의점 직원은 받는 만큼만 일한다고 했다. “지금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이에요. 영세한 가맹점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에 야간 수당 받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어차피 야간 수당 못 받을 거, 받는 만큼만 대충 일하자는 마음으로 요령 피울 때가 많죠.”
오전 3시: 올빼미 버스 VS 올빼미 택시
2013년 등장한 서울시 심야 전용버스인 ‘올빼미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30분마다 도착하는 심야버스 ‘N61’을 타기 위해 영하 1도의 추위 속에서 버스 정류장 주변을 배회했다. 정류장 안내 전광판에 ‘버스 혼잡’이라는 글씨가 떴다. 이 시간에 설마 사람이 있으려나. 안내 문구가 믿기지 않았지만, 묵직한 버스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야간 청소와 경비 업무 등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년 노동자들로 버스는 이미 포화상태. ‘기껏해야 술 취한 젊은이들만 몇 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했다. 하는 수 없이 심야 할증요금을 내고 택시를 탔다.
주로 야간에만 24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영훈(61)씨는 스스로 “올빼미가 다 됐다”고 말했다. “밤에 일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심야버스엔 늘 사람들이 많아요. 버스에 자리가 없어서 택시 타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니까.”
워낙 오랫동안 밤 생활을 해온 김씨는 생체리듬마저 달라졌다고 한다. 낮에 햇빛이 들면 졸리고 밤엔 눈이 초롱초롱해진다는 것. 오후 6시에 차를 몰기 시작해 오전 6시에 일을 마치면 소주 반 병 마시고 자는 게 일상이 됐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는데도 야간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주간 근무에 비해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는 것뿐이다.
오전 6시 10분: 식재료 ‘새벽 배송’ 메시지 수신
체험을 끝내고 눈을 붙이려던 오전 6시 10분 스마트폰 진동이 올렸다. 전날 주문해놓은 치즈와 빵, 채소 등 식재료가 집에 도착한 것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였다. 휴대폰에는 현관 앞에 배송한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돼 있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새벽배송은 그렇게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오전 일찍 소비자 문 앞까지 상품을 보내기 위해 밤은 누구에겐 건조한 노동의 시간으로만 각인돼 있을 것이다.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의 달콤함에 익숙해질수록 야간노동에 담긴 어두운 단면은 그렇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지난 3월 한 시장조사기업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 74.9%가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6명은 “앞으로 새벽배송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입소문의 영향인지 새벽배송 시장규모는 초기엔 10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000억원대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편리함 뒤에 감춰진 야간 노동의 위험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직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당장은 내 일이 아니니까. 올해 9월까지 국내 한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새벽배송 화물차 사고는 1,021건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79건에 비해 무려 13배나 급증한 것이다. 아침에 도착한 신선한 식재료는, 그렇게 야간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배달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24시간 풀 가동 체제가 사회의 완전한 규범으로 자리잡을 지도 모른다. 그 때도 우리는 편리함만 외치고 있을까.
‘야간 노동’ 문제는 없을까
어떤 형태의 야간 노동이든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의학적 측면에서 야간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그 어떤 개선으로도 해악을 줄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어두울 때 분비되는 멜라토닌을 억제해 내분비계를 교란하거나, 수면장애를 유발해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이는 암에 걸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야간 노동이 전립선암, 췌장암 등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야간 노동자 대부분이 수면장애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10명 중 3명은 불면증 고위험군으로 밝혀졌다.
야간 노동은 신체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야간 노동 대부분은 지인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주변화된 일이 많아서 ‘커리어(career)’로 인식되기보다는 단순 돈벌이로 치부되는 ‘잡(job)’으로만 존재한다. 어떤 장소나 경력에 뿌리내리기가 어렵고, 자신의 일에 대해 함구하다 보니 타인과 정상적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이종희ㆍ이영롱, 24시간 사회의 이면, 2012).
야간 노동이 인간성마저 황폐하게 만들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365일 24시간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 경기도는 ‘언제나 민원실’을 운영하며 주야휴일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서울시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문제를 돕기 위해 ‘24시간 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경찰이나 소방, 보건의료와 같은 안전 관련 부분이 아닌 공공서비스의 24시간 근무체제는 결국 민간이 365일 24시간 체제를 운용할 자락을 깔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편리한 서비스’라는 가면을 쓴 야간 노동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겠지만 노동 여건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적절한 규제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해법이다. 이들의 현실을 조명한 ‘달빛 노동 찾기(오월의봄 펴냄)’의 공저자 최규화 베이비뉴스 기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심야 영업규제 철폐 이후 겨우 20년 만에 개인의 일상과 노동의 형식이 완전히 뒤바뀌고,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이 돼버렸다. 밤을 잃은 사회를 ‘대세’라 여기지 않고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 데에서 노동의 미래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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