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연맹 구단지원팀 홍승민 대리
“예상이 오묘하게 맞아 신기해… 하지만
재미보다 ‘공정’한 대진 위해 최선 다할 것”
올 시즌 K리그는 유래 없는 흥행 가도를 달렸다. 전체 관중 236만3,278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52%나 증가한 수치였다. 2013년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선전과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 등 여러 호재가 겹쳤지만,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순위 경쟁이 큰 몫을 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야 우승팀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팀이 모두 가려졌다.
여기에 “도대체 누가 대진표를 짰냐”는 말이 나올 만큼, 최고의 승부에 걸맞은 최고의 대진표가 흥행에 부채질을 했다. 최종전에서 ACL 티켓을 놓고 3위 서울과 4위 대구, 1부리그 생존을 놓고 10위 인천과 11위 경남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우승을 노리는 울산과 전북은 37라운드 맞대결 이후 홈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러,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대진 담당자가 ‘알파고’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K리그1 흥행의 최고 조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소문만 무성했던 K리그 대진표는 누가, 어떻게 짜는 걸까.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5층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실에서 ‘대진표 깎는 남자’ 구단지원팀 홍승민(33) 대리를 어렵게 만났다.
사진 촬영도 한사코 거절한 홍 대리는 “주변에서 ‘신의 일정이다’부터 시작해 ‘수고했다’며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해줬다”며 “하지만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흥행한 것이지, 저는 한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연맹은 지난 2010년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리그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홍 대리가 각 구단의 홈 경기 개최 비율, 구장별 행사 일정, 3연속 홈ㆍ원정 경기 금지, 휴식일수, A매치 기간 등 모든 변수를 정리해 프로그램을 돌려, 출력된 복수의 안을 갖고 일정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슈퍼매치’ ‘동해안 더비’처럼 인기 경기들은 흥행을 고려해 어린이날 등 공휴일에 미리 배치하기도 한다. 울산이 최종전에 포항을 만난 것도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최종 순위가 결정되는 파이널 라운드도 1~33라운드와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막판 경쟁을 고려해 미세한 수정 작업이 이뤄진다. 홍 대리는 “파이널 라운드 일정을 짤 때 우승, ACL, 강등 3가지를 고려해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유지되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전북과 울산의 일정을 짜는 데 고심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양팀 맞대결은 37과 38라운드 사이에서 내부 논의가 길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우승 경쟁이 36 혹은 37라운드에 끝날 것 같아 37라운드에 배치하는 것이 그림이 가장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홍 대리는 “제 예상이 오묘하게 맞아 들어가 보면서 신기했다”고 고백했다. ACL에서 서울과 대구의 접전을 예상한 것도 정확하게 적중했다. 그는 경ㆍ제ㆍ인(경남ㆍ제주ㆍ인천)도 마지막 세 라운드에서 차례로 맞대결을 성사시키려 했지만 일정이 어긋나 아쉬웠다고 귀뜸했다.
그에게 내년에도 올해만큼 흥미진진한 대진표를 기대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시상식에서 선수들이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고마웠다. 하지만 제 역할은 드라마를 연출하는 게 아니다. 모든 팀들이 가장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게 어느 한 팀이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도록 일정을 짜는 게 제 일이다. 내년에도 모든 팬들이 페어(fair)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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