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등재 때 약속 어기고 2차 이행보고서도 내용 빠져… 정부 “유감” 표명
일본이 2015년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국제사회와 약속한 ‘강제 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사항 등을 여전히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1940년대 한국인의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으로 알려진 군함도. 연합뉴스

일본이 2015년 메이지(明治) 시대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국제사회와 약속한 한국인 등에 대한 ‘강제 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사항 등을 여전히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3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일본이 2017년 제출했던 첫 보고서에서 진전된 내용이 없었다.

일본은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군함도 등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일본은 당시 등재과정에서 메이지 시대 이후인 1940년대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2017년 제출한 첫 번째 이행경과보고서에서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전쟁 중, 전쟁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정보센터는 피해자를 기린다는 기존의 목적 대신 ‘싱크탱크’로서 설치하겠다고 했다. 정보센터의 위치도 해당 유산이 있는 나가사키(長崎)현이 아니라 도쿄(東京)에 만들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지난해 8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에 2015년 결정문의 충실한 이행을 요구하고, 당사국 간 지속적 대화를 독려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일본의 두 번째 이행경과보고서는 첫 번째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쿄의 정보센터 건물은 지난달 말 완공됐지만 일본은 내부에 피해자를 기리는 공간을 만들지 여부를 전혀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 또 일본은 이번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 관계부처, 지방 정부, 유산 소유자, 관리인 및 지역사회 등 광범위한 당사자들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진행”했다고 했으나 이는 당사국인 한국이 아니라 자국 내 대화만을 뜻한 것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지적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일본 측이 한국인의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번 보고서 역시 일본 정부가 상기 관련 이행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또 “일본 정부가 주요 당사국인 우리 측의 지속적인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동 보고서를 작성 및 제출한 데 대해서도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다음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2020년 6월까지 세계유산센터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등 각종 다자회의, 국제 세미나 등을 통해 일본 측에 2015년 결정문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장관은 이날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와 관련해 “2018년 제42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뤄진 결의 이행을 향한 진척 상황을 정리한 것”이라며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칭하는 일본 정부 용어) 문제에 관해 보고를 요구 받은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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