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냐 집고양이냐에 따라 형량·죄목 바뀌어 
 수많은 ‘자두’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바꾸어야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살해 사건’재판에서 범인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 내세운 주장이다.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살해 사건은 살해범이 한 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 ‘자두’를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사건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이 살해범을 엄벌에 처하라는 국민청원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다. 다행히 4개월이 지나 열린 재판에서 살해범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어 그는 법정 구속됐다. 끔찍한 범행에 비해 형량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동물학대범에게 실형이 내려진 건 이례적인 일이기에 동물보호 진영에서는 환영했다. 살해범은 바로 항소한 상태다.

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경의선 고양이 살해사건’ 피해자 예모 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그런데 왜 살해범은 계속 자두가 길고양이인줄 알았다고 주장한 걸까. 사실 이번 재판의 쟁점이 여기에 있다. ‘자두가 길고양이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죄목과 형량이 변하기 때문이다. 자두가 길고양이라면 동물학대죄가 적용되지만 집고양이라면 동물학대보다 형량이 무거운 재물 손괴죄가 함께 적용된다. 그간 동물학대죄로 실형이 선고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두가 보호자의 돌봄을 받던 집고양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실형이 선고된 것에 대해서 환영하고 있지만 자두가 길고양이였더라도 결과가 같았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동물은 법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현행법상 동물은 생명이 아니다. 반려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이다. 집의 싱크대나 의자 등과 같은 지위라고 보면 된다. 이 정도가 현재 한국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다. 독일이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동물학대 사건에 재물 손괴죄가 적용된다. 그런데 길고양이는 누군가의 재산도 아니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향한 동물학대 사건은 처리가 어렵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길고양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동물학대로 보지만 현실이 과연 그럴까?

경의선 고양이 살해 사건의 범인이 고양이 사체 위에 무언가를 뿌리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자두 사건이 터지고 문득 3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동물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생각 없이 한 동영상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영상의 내용은 끔찍했다. 자두 사건과 흡사하기도 했다. 가게에서 돌보는 고양이가 테라스에서 자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다짜고짜 고양이를 잡아서 패대기 쳐 죽이는 장면이었다. 한 동안 잔영이 남아서 덜덜 떨었고, 동네에서 돌보던 길고양이들이 하루라도 안 보이면 불안했다. 살해범은 곧 잡혔는데 이미 고양이를 살해해서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임에도 역시나 벌금형으로 그치고 말았다. 같은 해에는 다른 남자가 길에서 잠시 쉬고 있던 고양이를 걷어차는 사건이 발생했다. 만삭이었던 고양이의 뱃속 새끼가 죽을 정도로 거친 폭력이었다. 반려인이 놀라서 다가가자 남자는 “길고양이인줄 알았다.”는 변명을 남기고 도망갔다. 이렇게 떠난 수많은 ‘자두’들이 있다.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가 동물학대범, 동물살해범의 변명이 되고, 그게 받아들여지는 나라.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며 생명을 던지고 차고 죽이는 나라. 길고양이 600마리를 끓는 물에 산채로 넣어 죽이고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서서히 변하고 있다지만 고통 받고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기에는 염치없이 변화가 느리다.

경의선 고양이 살해 사건의 범인 정 모씨가 현장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모습. 연합뉴스

생명윤리학자인 제시카 피어스는 자신의 저서 <당신 개는 살쪘어요!>에서 철학자 힐러리 복의 주장을 소개한다. 복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는 동물을 물건 취급하면서 반려동물이나 반려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동물 관련 문제를 모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에 피어스는 언어를 바꾸면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자유롭게 사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다가 길고양이로 부르기 시작한지 고작 10년이나 되었을까.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 단어가 불편하다. 차가운 길거리가 누군가의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동네 이웃들이 길고양이 밥 주냐고 물으면 “네, 우리 동네 고양이에요.”라고 답한다. 동네가 이 아이들 집이고, 이웃인 우리 모두가 아이들의 보호자라는 뜻을 전하고 싶다. 대부분 ‘동네 고양이가 무슨 말이래?’ 하겠지만 누군가는 뜻을 생각해보지 않을까. 언젠가 외국에 사는 지인이 자기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집도 마련하고, 밥을 챙기며 함께 돌보는 고양이가 있는데 그곳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단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돌보는 고양이이니 말없이 데려가지 말라고 말이다.

길고양이인줄 알았다는 변명을 동물학대에 대한 방패로 삼는 사람과 그걸 용인하는 사회를 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부터 바꾸기 시작하면 저 아이들의 삶이 좀 나아질까 생각한다. 길고양이가 아닌, 우리 동네 사람들이 돌보는 ‘동네 고양이’. 훨씬 따뜻한 이름 아닐까.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당신 개는 살쪘어요!>, 제시카 피어스, 황소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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