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종류의 꽃충이 수분(꽃가루받이)를 돕는 울릉도 특산식물 섬바디. 사진 국립수목원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하루씩 한주씩 한달씩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만 올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은 참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살아가는 틀이지만 만일 끝과 시작을 정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련 혹은 가능성이 남아 이어지는 여러 일들이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일들이 덜 생겨나 단순해 질 수도 있는 걸까요. 연말에 몰리는 수많은 보고ㆍ심의ㆍ평가 등등의 일정들이 힘겹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도 연구기관이어서 1년간의 연구결과를 분석 정리하여 발표하고 그 성과를 심의하는 일정이 이즈음의 가장 중요한 일정중의 하나이지요. 며칠에 걸쳐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수십 개의 연구과제들을 만나며 지난 1년간 산과 들과 실험실에서 흘린 땀과 노력, 그 결과를 가지고 분석하며 고뇌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찡했습니다.

울릉도 식물과 곤충들의 관계도(파란색 각각 식물들과 이를 찾아 온 주황색 각각의 곤충들, 국립수목원 제공)

그중에서 아주 특별하게 마음을 끄는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환경에 따라 우리나라의 식물종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다른 생물들과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이지요. 사실 수많은 생물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떤 기작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도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생물종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답니다. 식물, 곤충, 버섯 등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종을 분류와 생리, 생태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함께 복합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종류의 식물을 찾아가 상호관계를 맺은 꽃마꽃벌류(Lasioglossum ). 사진 국립수목원

우리 연구자는 한정되고 격리된 지역에 독특한 식물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는 울릉도를 대상으로 45종류의 식물들에 대해 꽃이 피면 찾아오는 곤충의 종류들을 조사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식물들이 꽃이 필 때를 맞추어서 며칠이고 찾아드는 곤충들이 꽃들을 방문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조사한다는 일은 상상만해도 어려운 일이지요. 그 식물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곤충의 방문을 받은 것은 ‘섬바디’라는 아름다운 식물이었습니다. 섬바디는 이견이 있는 학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름에 울릉도 곳곳 햇살이 비치는 산자락에 작은 꽃들이 모여 손바닥만한 우산같은 꽃차례를 만들며 풍성하게 피어나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우리 꽃입니다. 조사기간 동안 섬바디에는 모두 32종류, 즉 이 연구에서 확인된 곤충가운데 반 정도가 이 꽃을 찾아와 꽃가루받이를 도왔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제한적인 장소에 살아가는 특산식물이나 희귀식물은 서로 특별한 관계를 가진 식물과 곤충만이 수분매개자의 역할을 하는데 이 섬바디는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열고 관계를 형성하며 (전문용어로 수분지위가 아주 높다고 말합니다)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곤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 꽃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꽃들을 찾아다녔는데 그 중 꼬마꽃벌류 한 종이 16종류의 꽃들을 찾아갔고 이 각각의 식물과 곤충들이 연결돼 그물망보다도 촘촘한 네트워크가 빽빽하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섬 울릉도가 외지고 척박하여 극히 제한된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어느 곳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우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생물상을 만들어 내는 특별함의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파격적으로 열린 자세로 서로를 맞아들이며 소통하고 교류하며 맺어진 막강한 네크워크의 힘입니다. 조금 달라도 편이 갈리고, 내편이 아니면 곧 적이 되어 이해와 배려라는 아름다운 방법을 두고 갈수록 극단적이고 아픈 말들로 채워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울릉도는 저 멀리 동해의 한 가운데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겠다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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