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경부고속도로 당진터널 구간 공사 현장의 모습. 당시 기술 부족과 암반 구조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해 터널 천정이 무너지는 사고가 13차례나 발생했으며, 9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국가기록원 ‘길 기록관’ 홈페이지 중 기록영상물 캡처

초등학교 명칭이 ‘국민학교’였던 시절의 도덕 시간. 한 반 학생 수가 60명이 넘는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선생님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읽어주며 ‘희생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려 했다.

꽤 깊은 곳까지 터널을 뚫고 들어간 지점, 한 노동자가 발파공사용 폭약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다. ‘큰일이다, 여기서 터지면 이 공사가 물거품이 된다’는 마음에 그는 폭약을 안고 터널 입구로 달렸다. 터널 밖으로 나오자마자 폭약은 터졌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터널이 붕괴하는 것을 막았다는 얘기였다.

실화인지 만들어진 ‘신화’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꼬마였던 당시에도 이런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터널 건설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가?’ 만약 같은 터널 안에 여러 사람이 있었고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내용의 이야기였다면 그런 궁금증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을 좀더 알게 되면서 이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사를 ‘전투’에 비유했다. 기술과 자금은 턱없이 부족한데 터무니없을 정도로 촉박한 시일 안에 완공하기 위해 무조건 공사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난도가 높은 구간은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대통령이 정해 놓은’ 1970년 7월 7일에 맞춰 완공한다는 목표가 중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 가장 어려웠던 구간으로 꼽히는 것이 당재터널(현 옥천터널)이다. 터널 뚫는 기술이 부족하고 지반 특성도 제대로 몰라 13번이나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이 구간에서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희생자 수가 9명에 이른다. 그렇게 죽어가는데도 납기일은 변하지 않았다. 7월 7일이 지나면 하늘에서 소행성이 떨어지거나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닌데 속도를 늦추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전체 구간에서 발생한 77명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탑은 그래서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에 있다.

수십년 전 교사가 폭약을 안고 숨진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던 가치는 터널 공사라는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희생 정신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그런 분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로 가르쳤어야 하는 것은 ‘빨리빨리’ 구호와 몰아치기 공사가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과거의 진실과, 이를 거울 삼아 산업 현장에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교훈이 아니었을까.

이제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실화인지 아닌지 모르는 노동자의 희생 이야기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나 안전보다 납기나 비용절감을 더 중시하는 풍토는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아직도 산업 현장에서는 하루에 두세 명이 추락하거나 기계 등에 끼이는 등 끔찍한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 생긴 ‘비정규직’이 위험한 일을 주로 담당한다는 게 차이점일까. 마치 공기처럼,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산재 사망사고의 심각성이 세간의 관심을 얻게 된 것조차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돼 간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수십년 전과 마찬가지로 세상이나 기업은 사람의 목숨 같은 건 중시하지 않으니 일터에서는 개인이 알아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이제는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명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대의란 또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 외엔 없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산업현장에서 죽음의 행렬을 멈추어야 한다. 위령비조차 없이 숨져간 수많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 줄 방법도,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것 외엔 없다.

최진주 정책사회부 차장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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