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사상자를 낸 런던 브리지 테러가 총선을 앞둔 영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하면서 되살아 난 테러 공포에 더해, 테러 전력이 있는 용의자가 가석방 중 범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형사사법 제도 전반에 대한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로 들뜬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브리지에서 흉기 테러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용의자 우스만 칸(28)은 출동한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IS는 즉각 범행 배후임을 공개했다. “칸은 IS의 전사였다”면서 자신들의 신념에 반하는 국가의 시민을 노린 테러라고 주장했다. IS가 실제 범행을 사주했는지 여부는 아직 조사 중이다. 다만 2년 전 사건 여파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2017년 6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IS 소행의 차량 테러로 8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친 대형 테러가 일어났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건은 극단주의 독을 뿌리 뽑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경고”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용의자 수사를 통해 영국 정부의 허술한 테러 관리 실태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칸은 2010년 12월 런던 증권거래소 폭탄 테러를 기도한 혐의로 16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6년만 복역하고 지난해 12월 30년 간 전자발찌 부착 등의 조건으로 풀려났다. 조기 석방된 테러 용의자가 별다른 제지 없이 재범에 나서면서 ‘가석방 제도’를 놓고 논쟁이 불붙은 것이다.
가석방 요건 등 테러방지 대책은 12일 실시 예정인 조기총선에서도 주요 정치쟁점으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베트 쿠퍼 노동당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칸은 가석방위원회 심사도 없이 풀려났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며 집권 보수당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자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은 “당신네 정부가 2008년 도입한 법에 따라 위험한 테러리스트도 형기 절반만 마치면 (심사 없이) 자동으로 풀려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테러 사범에 대한 형량 강화와 자동 조기석방 제도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강경 대책을 약속하며 런던브리지 테러를 선거전에 끌어들였다. 존슨 총리는 30일 성명을 통해 “만약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테러범들이 교도소에서 형량을 다 채우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중요 테러 범죄에 연루될 경우 “최소 14년 형기를 채워야 한다”는 구체적 수치도 내놓았다.
그러나 참혹한 테러 피해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견제하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희생자 중 한 명인 잭 머리트(25)의 아버지 데이비드는 트위터에 “아들의 죽음이 더 가혹한 형벌이나 불필요한 구금의 구실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재소자 재활 프로그램인 ‘러닝 투게더’를 운영하던 케임브리지 출신 사회활동가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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