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점심시간에 거리로 “광복 홍콩, 시대 혁명” 외치며 감격
“갈 길 멀어” 민주진영 당선자 70여명 구의원, 홍콩 이공대로 몰려가
“학생들과 이공대(Poly-U)를 구해내자.”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압승을 거둔 25일, 점심시간이 한창인 오후1시가 되자 홍콩섬의 번화가 센트럴에 직장인과 시민 수백 명이 모였다. 사방으로 뚫린 대로 곳곳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내 길게 줄지어 늘어서 손을 치켜들고 소리를 맞춰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을 외쳤다. 지난 6개월간 시위 현장에서 귀가 닳도록 울려 퍼진 구호다. 전날 294만명이 투표소로 몰렸지만 행여나 경찰이 트집을 잡아 선거를 연기할까 싶어 누구 하나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마스크를 다시 쓰고 거리로 나섰다.
홍콩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선거혁명을 이뤄낸 만큼 흥겨울 법도 하건만, 저마다의 표정에는 환호보다 비장함이 짙게 배어있었다. 맨 앞에서 목청을 높여 분위기를 이끌던 곽(郭ㆍ40)씨는 선거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자 “한마디로 기쁘지만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파가 선거에서 크게 이겨 민심을 정확히 보여줘서 흥분된다”면서도 “하지만 이공대에는 아직 (20여명의)학생들이 남아있고, 그들의 심신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근처 중국계 은행에 다닌다는 양복차림의 30대 직장인은 “이전에도 이 같은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약속된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것) 시위에 꼬박꼬박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된 의원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 겁내지 말고 정부를 상대로 할 말을 다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주변에는 경찰 차량 10여대가 배치돼 상황을 주시했다. 이전처럼 무장경찰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시민들 사이에선 “캐리 람 행정장관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목을 내놓으라”는 섬뜩한 구호도 들렸다. 람 장관이 물러나고 행정장관 직선제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란 목소리도 높았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선거 승리 축하 메시지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직 남아있는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독려하는데 주력했다. 이날 한 남성이 샴페인을 터뜨리고 주변 시민들에게 따라주며 환호성을 지르는 퍼포먼스를 벌이긴 했지만, 시민들이 적극 호응하기는커녕 도심 빌딩 사이를 울려 퍼지는 구호 소리에 금세 묻혔다. 한 20대 여성 참가자는 “정부를 상대로 이제 고작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라며 “축배를 들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함께 구호를 외치던 50대 후반의 중년 남녀 3명은 “캐리 람 장관이 말을 듣지 않아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나”라며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날 민주진영 당선자 70여명과 시민 1,000여명은 경찰이 2주 가까이 봉쇄하고 있는 홍콩 이공대 캠퍼스 앞으로 몰려가 시위대 지지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캠퍼스를 포위한 경찰과 밤새 대치를 이어갔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며 샤틴에서 당선된 지미 샴(岑子杰) 민간인권진선 의장은 “정부는 이공대 봉쇄를 풀고 시위 참여자에 대한 기소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공대와 인접한 훙함, 침사추이, 야우마테이 등 3곳에서는 학생들을 응원하는 긴급 집회가 열렸다. 또 쿤퉁에서는 지난 6개월간 시위의 기록을 담은 영화를 상영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부에 맞서는 시민들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홍콩=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