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말기의 권력자 서태후의 '악덕'은 절대권력의 보편적인 악덕이었다.

한 고조 유방의 아내 고황후(여후)와 당 고종의 황후이자 중국사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 청 말기 난세를 호령한 서태후는 흔히 ‘중국 3대 악녀’라고 불린다. 언제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분류됐는지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의도나 맥락은 자명하다. 동서고금이 대체로 그렇지만, 동양 정치사는 여성 권력자를 특히 못마땅해했다.

셋은 모두 남성 권력자의 힘에 기생하다가 스스로 절대권력자가 된 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야비한 술수와 근친 살해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고, 권력을 장악한 뒤로는 정적을 없애고 사치를 일삼았다. 미남자들을 침소로 불러들여 음욕(淫慾)을 채웠고, 소문이 나지 않도록 남자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잔인한 폭군이자 욕망의 화신이었다.

동양사학의 근년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설들은 대부분 근거 없는 풍설이거나 과장된 야사다. 하지만 이 설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역대 제왕들이 이들 여성 권력자보다 덜 사치스러웠거나 욕망에 덜 충실했고 덜 잔인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3대 악녀’의 악덕이란 왕조 절대권력의 공통적인 악덕에 가깝다.

시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그래서 사료가 비교적 충실히 남아 있는 서태후(효흠현황후, 1835.11.29~ 1908.11.15)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빈한한 관리의 딸로 태어나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으로 입궐, 왕자를 낳아 권력을 쥐게 된 서태후는 함풍제 사후 동치제의 친모로서, 조카인 11대 광서제의 큰어머니이자 마지막 황제 선통제(부의)의 큰할머니로서, 아편전쟁 이후 난세의 중국을 약 40년 동안 통치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왕권과 관료 권력을 짓눌렀고, 정적을 처형하거나 살해했으며, 베이징 북쪽의 여름 별장 ‘이화원’의 예처럼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를 일삼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봉건 권력자인 서태후를 폄하하면서도 반제국주의의 한 상징으로 반외세 의화단 난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서태후를 긍정했다. 근대 동양 사학자들은 서태후가 악의적으로 덧칠된 데는, 유교 가부장 문화의 여성 폄하와 한족의 만주족 국가인 청나라에 대한 폄하가 겹쳐졌다고 평한다. 문화대혁명 이후 장칭(江靑) 등에 대한 격하 운동이 한창일 때 서태후 등은 대중문화를 통해 다시 불려 나와 대중의 돌팔매질을 당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