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미ㆍ강영심 니트컴퍼니 대표 
최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만난 박은미(왼쪽)ㆍ강영심씨는 “청년 니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되기 쉬운 청년들을 집 바깥으로 끌어내 건강한 무업 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이제 놀만큼 놀았다, 낮에 집에 있는 것도 지겹다 하는 분, 오후 2시에 일어나는 백수 환영!’

백수들이 다니는 가짜 회사 ‘니트(NEETㆍ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컴퍼니’의 2019년도 하반기 신입사원 모집 공고 중 일부다. 니트컴퍼니는 비영리 스타트업 ‘니트생활자’의 공동대표 박은미(37)ㆍ강영심(39)씨가 백수들의 회사놀이를 위해 만들었다. 건물도, 사업자도, 월급도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옆 자리 동료였던 두 사람이 졸지에 ‘퇴사 동기’가 되면서 벌인 일이다. 시작은 지난 1월 니트생활자라는 판을 깔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니트생활자는 백수(무업) 기간 동안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연결되고 협업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백수 되기를 반복했던 두 사람의 경험이 녹아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처지게 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업무미팅 하듯 만나 서로 생사 확인을 하고, 할 일을 공유했어요.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일들(버킷리스트)을 하나씩 함께 하다 문득 우리뿐일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많지 않을까 생각이 미쳤죠.”(강영심) 자칫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 쉬운 청년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 건강하고 활기찬 무업 기간을 보내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번이 꼭 6번째 퇴사였어요. 그 동안 무업 기간에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어요.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쉽고요. 근데 이번엔 퇴사 동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 든든하더라고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모아 같이 놀아보기로 한 거죠.”(박은미)

퇴사 한 달 만에 두 사람은 블로그를 만들고, 니트생활자라고 이름 붙였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에 ‘생활자’를 합친 말이다. 주로 ‘놀고 먹는’이라는 수식이 붙고,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청년 니트와 백수를 새로운 시선으로 뒤집어보려는 시도다. “일단 니트족이라고 하면 낙오자에 루저 취급을 하잖아요. ‘우리는 너희가 규정하듯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야, 나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야’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어요.”(강영심) 이들이 생각하는 무업 기간은 무가치한 잉여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와 모색의 과정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퇴사 버킷리스트였던 한양도성 걷기, 미술관 관람하기, 북한산 트레킹 등을 함께할 니트생활자를 모았다. 10개월간 10번의 이런 활동을 통해 대기업 퇴사자부터 휴학 중인 대학생까지 다양한 니트생활자 122명을 만났다. 좀더 니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업화를 고민하던 두 사람은 지난 5월 서울시NPO지원센터가 지원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선정되면서 니트컴퍼니를 띄우게 됐다. 서울시NPO지원센터는 2017년부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공익활동 모델을 만들기 위해 비영리 스타트업에게 500만원의 사업자금과 멘토링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게 문을 연 니트컴퍼니에 지난 8월 니트생활자 12명이 단기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사장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존 면접과는 반대로 지원자가 운영자를 면접해 입사를 결정하는 ‘거꾸로 면접’을 통해서다. 입사 후에는 저마다의 개인 업무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북한산 둘레길 주 6회 걷기, 팔굽혀펴기 30번씩 3세트 하기, 핫플레이스 다녀와 블로그 게시하기 등이다. 매일 업무일지를 쓰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다 같이 모여 미팅도 했다. 총 28개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팀프로젝트로 ‘내 직업 설명서’라는 기획전시도 가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준 니트컴퍼니 직원들은 무업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는 불안한 표정에, 백수 기간이 너무 오래 돼서 여기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분이 있었어요. 니트컴퍼니를 다니면서 활력을 얻고, 표정도 점점 좋아지더니 마지막에는 창업을 했다며 본인 명함을 파오셨더라고요. (니트컴퍼니가) 스스로 도약할 기회가 됐다는 게 너무 뿌듯했어요.”(강영심) 지난 9월 종무식을 끝으로 해산한 니트컴퍼니 1기 직원들은 “혼자서는 개인 업무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업무일지를 공유 받으며 자극이 됐다” “백수에게 한 끼의 식사 자리는 너무 소중했다” 등 반응을 보냈다. 니트컴퍼니 2기는 재정비 시간을 갖고 내년 4월쯤 다시 막을 올린다.

“전통적인 일의 개념이 변하고, 회사가 내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잖아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청년기뿐 아니라 평생 해야 될 고민이 됐어요. 무업 기간 많은 사람들이 좀더 안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걱정 없이 니트생활자에 와서 머물다가 다음 스텝을 밟아갈 수 있는 정거장이 됐으면 합니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박은미)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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