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자식한테 절을 해야 합니까.”
23일 오전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합동 위령재(불교에서는 ‘제’가 아닌 ‘재’로 표현)에 참석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의 부모 A(68)씨가 한 말이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화성살인 9차 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인 1989년 7월 18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 중이던 김양이 실종된 사건이다. 같은해 12월 책가방과 속옷 등이 발견됐지만 시신을 끝내 찾지 못했고, 경찰은 ‘가출인’으로 분류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위령재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경기 화성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효찰대본산 용주사 경내 관음전에서 열렸다.
의식 진행되는 동안 A씨 등 유족들은 멍하니 재단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단에 향을 피우고 자리로 되돌아가던 A씨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30년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살았다”며 “경찰이 은폐를 해서 시신까지 다 없애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이 은폐하면 누가 잡아야 하느냐”며 “병들 것은 다 병들고 30년 동안 이게 뭐냐. 경찰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초등생 어머니도 옆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어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의 추도사가 끝난 뒤에도 손을 들고 “질문이 있다”고 한 뒤 “경찰 믿고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시신을) 감춰가지고 속에 병이 나고 이게 말이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왜 그들을 처벌 못하느냐, 경찰이 처벌 못하면 내가 복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날 위령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 동안 경기 화성시 태안과 정남·팔탄·동탄 등에서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이춘재가 자백한 4건의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용주사 주지 성법스님과 불자들, 아직 실종사건으로 분류돼 있으나 이춘재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초등생 피해자의 유족,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 권칠승 국회의원, 장영근 경기도 문화체육국장 등이 참석했다.
위령재는 피해자의 영혼을 법단으로 모셔오는 ‘시련’ 의식을 시작으로 피해자 영혼을 영단에 모시고 천도의식을 고하는 ‘대령’ 의식, 고혼을 깨끗이 씻고 정화하는 ‘관욕’ 의식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피해 영령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용주사 본말사 주지 스님들이 천도염불을 집전했다. 추도사에 나선 성법스님은 “33년간 묻혀 있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고통받아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재를 마련했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고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속절없이 참혹하고 억울한 희생을 당하신 분들을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빌며 영원한 안식과 극락왕생을 기원한다”며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존재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사과와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희생자들의 원혼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유가족들이 짊어지셨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확인하여 알려드리는 것이 우리 경찰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본부에서 모든 사건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철저히 수사하여 진실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제라도 고인들이 편안히 눈 감으실 수 있도록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겠다”며 “당시 수사 과정에 과오가 있었다면 그 역시 사실대로 숨김없이 밝히겠다”고도 했다
추도사가 이어 진 뒤 살풀이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왕생 시키기 위해 천도재를 올릴 때 법식을 베풀고 경전을 읽어주는 ‘시식·지전무’, 초청된 영혼을 돌려보내는 ‘봉송’의식 순으로 진행됐다.
A씨 등 유족들은 위령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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