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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테러부터 발리 테러까지… 죽음의 현장에 있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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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테러부터 발리 테러까지… 죽음의 현장에 있던 한 사람

입력
2019.11.21 16: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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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 생긴 피부의 찰과상, 대부분 이마와 콧날, 턱 왼쪽에 수직 방향으로 남. 생긴 지 얼마 안 된 얼룩덜룩한 멍(8x2㎝)이 목 오른쪽 아래 비스듬하게 나 있음.’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낱낱이 내보이는 사람, 법의학자(법의관)다. 법의관들은 살인사건을 재구성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를 풀며, 억울한 피해자를 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기여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신은 많은 것을 말해주기에 법의관들은 밤이든 낮이든 상관 없이 시신을 마주한다. 죽음이 일상인 이들이다.

‘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는 1987년 법의관이 돼 30여년 간 시신 2만3,000구를 부검한 영국의 리처드 셰퍼드가 쓴 일종의 자서전이다. 저자는 영국 헝거포드 난사 사건 현장부터 미국 9ㆍ11테러, 발리 폭탄 테러, 다이애나 비 사망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해 왔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러한 사건에서 마주한 시신들의 면면부터 법의관으로서의 삶, 죽음과 마주하며 얻게 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이야기 등을 상세히 풀어 놓는다.

법의관은 경찰, 과학수사대와 함께 여러 사건의 중심에 선다. 2001년 발생한 미국 9ㆍ11테러 현장에 급파됐던 셰퍼드는 아직도 당시의 처참한 현장을 잊지 못한다. 시신을 보관하려고 마련된 트레일러에 실려 온 사망자 시신은 2,753구. 시신 조각은 7만개가 넘었다. 셰퍼드는 이 가운데 영국인 사망자를 분류하고 시신을 송환하는 역할을 맡았다. 법의관은 비단 현장뿐만 아니라 과거 수사 기록과도 사투를 벌이며 사인을 결정한다. 영국 정부가 2004년 다이애나 비 사망 사고 재조사를 결정한 때 셰퍼드는 1997년 사건 당시 기록을 재검토하는 임무를 맡았다. 셰퍼드는 2006년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결론 낸다. “그 차에 승차한 사람 중 누군가를 살해하려는 음모는 없었다. 그것은 비극적인 사고였다.”

크고 작은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치는 역할을 맡는 만큼 법의관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유가족을 대할 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살인사건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이제 내 기분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했다. (…) 충격과 공포, 비통함에 짓눌린 가족들. 대답할 수 없는 질문(“그 애가 고통스러워했을까요, 박사님?”)을 던지고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 유족들은 방을 꽉 채운 채 흐느적거리는 스펀지처럼 주위 산소를 모두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셰퍼드 역시 출중한 법의관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2016년 즈음 PTSD를 진단받고 잠시 휴직에 나섰을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컸다.

책의 내용은 모두 실화다. 저자의 가족과 동료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마치 셰퍼드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남다른 흡입력 덕에 이 책은 지난해 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영국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닥터 셰퍼드, 죽은자들의 의사

리처드 셰퍼드 지음ㆍ한진영 옮김

갈라파고스 발행ㆍ464쪽ㆍ1만8,5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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