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가 2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 측근에게서 핵심 쟁점으로 꼽히던 ‘쿼드 프로 쿼’(quid pro quoㆍ대가)에 대한 폭발력 있는 증언이 나왔다.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는 하원 공개청문회에서 미 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수사 사이에 대가성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다.
20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선들랜드 대사는 “‘쿼드 프로 쿼’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예스’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4억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보류해두고 이를 수단으로 활용해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는지 파고들어 왔는데,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이 나온 것이다.
이날 선들랜드 대사는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분명한 지시에 따라 루디 줄리아니(트럼프 개인 변호사)와 함께 일했다”면서 “줄리아니와 일하는 게 싫었지만, 지시를 거부하면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이해해 따랐다”고 해명했다.
트럼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압박에 관여했다는 폭로도 뒤따랐다. 선들랜드 대사는 “모두가 돌아가는 일을 알고 있었다. 비밀이 아니었다”라고 강조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등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수개월간 우크라이나 의혹에서 비껴있던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대리인’으로 급부상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고 지적했다.
선들랜드의 증언으로 탄핵을 주도하는 민주당의 움직임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날 증언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이전의 다른 증언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이라고 평가했고,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를 대가성 여부에 연루시킨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전했다. 호텔 사업가 출신의 선들랜드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측에 10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대통령 측근으로 꼽혀왔다.
다만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자신과 통화하면서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입을 통해 직접 ‘바이든 조사’가 ‘군사원조’의 대가라는 점을 확인받은 건 아니라는 단서를 단 것이다. 그러나 대사는 “원조 보류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줄리아니는 수사를 압박하고, 대통령은 줄리아니와 함께 일하라고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대가성을 파악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꼬투리 잡아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날 백악관에서 자필 메모를 들고 기자들 앞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선들랜드 대사의 증언을 발췌해 읽었다. 수사를 요청한 것은 맞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이 마녀사냥(탄핵조사)은 이제 끝나야 한다”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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