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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압박 美, 급기야 ‘주한미군 감축 카드’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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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압박 美, 급기야 ‘주한미군 감축 카드’ 시사

입력
2019.11.20 18:24
수정
2019.11.21 00:0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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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 美 국방 “주한미군 감축할지 안 할지 예측 않겠다”

나흘 전엔 “미군 유지” 공약… 방위비 협상 파행 후 말 바꿔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 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 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9일(현지시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한국을 ‘부자나라’라고 재차 언급하며 대폭 증액을 압박했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측하지 않겠다”는 미묘한 언급도 내놨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명확히 선을 긋지 않아 방위비 협상 추이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지렛대로 활용할 여지를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필리핀을 방문 중인 에스퍼 국방장관은 이날 필리핀 국방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연말까지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이 타결되지 않으면 다음 결정은 무엇인가. 한반도에 군대 감축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SMA에 관해서 말하면 나는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무부가 (방위비)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 논의들은 유능한 사람(국무부)의 손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한 번에 한 발씩 내디디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어 “내가 며칠 전 공개적으로 말했듯이 한국은 부유한 나라”라며 “그들은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며 “그 이상은 국무부가 세부사항을 해결하도록 남겨두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방위비 대폭 증액 방침을 강조하면서도 추후 조치는 예단하지 않겠다는 원론적 입장 표명으로 볼 수 있지만,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은 예사롭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지렛대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워싱턴 외교가에서도 무성하게 나오는 예민한 사안인데도, 방위비와 주한미군 연계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에스퍼 장관이 한국 방문길에 올랐던 지난 13일 기내에서 주한미군 감축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우 유능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때라도 어떤 비상사태에도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던 것과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15일 한미안보협의회(SMC) 공동성명에서도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하고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은 서울에서 열린 SMA 3차 협상이 거친 파열음을 내며 80분만에 파행된 지 몇 시간 후에 나온 것이다. SMA 미국 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가 장외 압박전을 벌이며 파상 공세를 펴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문제까지 여지를 둬 압박 수위를 높여가려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앞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지난주 “보통의 미국인들은 주한 주일미군을 보며 왜 그들이 거기에 필요한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묻는다”고 언급해 미국 내 기류의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실제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위해 주한미군 감축을 공식 의제로 제기하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도 만만찮다. 주한미군 감축을 위해선 국방수권법에 따라 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대북 강경론이 강한 의회가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어서다. 특히 연말을 기점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좌초 기로에 들어설 수 있어 탄핵 조사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주한미군까지 건들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 결정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강한 반발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다.

미국 의회에선 민주당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방위비 인상 요구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민주당 소속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은 “(한국에) 50억 달러를 요구한 게 사실이라면 동맹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회 차원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성명을 발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과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19일 미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분담금 협정 갱신을 위한)협상이 논쟁을 일으켜 60년 동맹이 경색될 조짐”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주한미군을 당장 감축하지는 않더라도 한미 관계의 중장기적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로 한국에 대한 동맹 파트너로서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면 주한미군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왔다. 주한미군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도 예측하기 어려운 중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주한미군 감축론이 불거졌을 당시 이를 부인하면서도 “나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비용을 절감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북미 협상, 지소미아 종료, 방위비 협상 등이 맞물려 주한미군 주둔문제가 지속적으로 한미관계의 시험대로 등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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