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신종 역외 탈세 등 171건 세무조사
국세청이 다국적 정보기술(IT)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 행태에 칼을 빼들었다. 한국에 세운 법인이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단순 업무를 하는 것처럼 속인 채 수익 대부분을 본사로 빼돌린다는 혐의를 받는 기업을 포함, 글로벌 IT기업 여러 곳을 세무조사 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기업 중에도 이른바 ‘빨대’로 불리는 해외 합작회사를 통해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는 회사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세청은 역외 탈세 및 공격적 조세회피 혐의 171건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0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역외탈세 60건(법인 46개, 개인 14명)과 해외 부동산 취득자 57명, 해외 호화사치 생활자 54명이다.
특히 역외 탈세는 이번 정부 들어 국세청이 4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해 총 1조573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중점 조사 분야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일부 대기업이나 다국적 IT기업이 조세 조약이나 세법의 허점을 악용해 한층 진화된 탈세 수법을 시도하고 있어 중점 검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디지털 상품의 특성을 활용해 국내에서 큰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꾸미거나, 해외 현지법인이나 거래처와의 정상적 거래를 위장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수법 등이 포함됐다.
다국적 IT기업 A사는 한국에 사업 지원 명목의 자회사를 설립한 뒤 소액의 용역 수수료만 지급하고 대부분 소득을 본사로 회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A사 국내 법인이 실제로는 영업, 마케팅, 파트너십 구축 등 사업과 관련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단순 지원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꾸며 법인세ㆍ부가가치세 등 납세 의무가 부과되는 ‘고정사업장’ 지위를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법인 B사는 외국 기업과 해외 합작회사(C사)를 설립한 뒤 C사를 사주가 기업 이익을 빼돌리는 ‘빨대’로 활용했다. B사는 회계상 외국 기업에 C사 지분을 양도한 것처럼 처리했지만 실제로는 사주가 차명으로 계속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주는 C사와 거래하는 것처럼 꾸며 수출대금 일부를 빼돌리거나 C사 배당금을 자신의 해외 계좌로 보내는 수법을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필요 시 국가간 조세정보 교환을 통해 역외 탈세자와 이를 도운 조력자에 대한 금융정보와 세금 신고내역, 거래 사실 등의 정보를 제공받을 계획이다. 검찰과 관세청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 체제도 가동하기로 했다. 이준오 조사국장은 “국내외 정보망을 최대한 활용해 신종 역외 탈세 및 공격적 조세회피 유형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끝까지 추적 과세하겠다”며 “고의적ㆍ악의적 행위가 발견되는 경우엔 고발 등 엄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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