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인천 감독이 지날달 19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경기를 마친 뒤 선수들과 포옹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화창한 봄날이던 지난 5월 12일. 인천 소재 골프장 드림파크 컨트리클럽에서 만난 2002 한ㆍ일 월드컵 주역 유상철(48) 감독은 싱글벙글했다. 취미로 골프를 즐겼던 그는 프로 선수들도 한 번 하기 어려운 ‘홀인원’을, 그것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정규투어 대회인 휴온스-셀라비에 셀러브리티 프로암에서 기록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유 감독은 이날 “좋은 일이 있지 않겠느냐.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며 남은 2019년 행복한 앞날을 꿈꿨다.

이틀 뒤인 14일 유상철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깜짝 선임됐다. 성적부진 등의 이유로 물러난 욘 안데르센(56ㆍ노르웨이)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프로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6월엔 꼬마시절 자신이 가르친 이강인(18ㆍ발렌시아)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하며 ‘가르친 보람’도 느꼈다. 2002 한ㆍ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득점한 ‘4강 신화 주역’임에도 지도자로선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인생에 진짜 봄날이 오는가 했다.

그런데 좋은 기운이 오래 가지 못했다. 인천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시즌 초반 고꾸라진 성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강등 위기감이 그를 둘러쌌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중순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피부와 눈의 흰자가 노랗게 변하는 것을 일컫는 황달은 담즙색소(빌리루빈)가 몸에 많이 쌓였을 때 나타나는 증세로, 췌장암이 어느 정도 진행 됐을 때 보이는 증세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정밀검사 결과 유 감독은 췌장암 4기로 밝혀졌다. 췌장암이 진행될 만큼 진행됐단 얘기로, 생존율 또한 극히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 감독은 19일 인천 구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담담히 자신의 상태를 전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이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겠단 의지이자, 병마와 끝까지 싸우겠단 다짐이다. 유 감독은 “축구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 인천의 K리그1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까지 벤치를 지키겠단 뜻도 함께 전했다. 그는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제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함과 동시에 우리 선수들, 스태프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어울리며 저 자신도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한다”고 전하면서 “남은 2경기에 사활을 걸어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원과 관심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K리그1(1부 리그) 10위에 올라 있는 인천은 24일 상주를 상대한다. K리그1 12위는 K리그2(2부 리그)로 강등되고, 11위는 K리그2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반드시 10위를 지켜 팀을 K리그1에 남겨둬 책무를 다해내겠단 게 유 감독의 의지다. 2002 한ㆍ일 월드컵 감동을 품고 사는 국민들은 유 감독의 투병 소식을 듣고 그를 응원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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