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일 일본 정치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다. 재임 일수 2,887일을 기록하며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의 기록(2,886일 재임)을 넘어서며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에 오른다. 2006년 9월 전후 세대 첫 총리이자 전후 최연소(만 52세) 총리로 등극했던 1차 정권 시기는 1년 만에 단명했지만, 2012년 12월 2차 정권 이후 6년 11개월 간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제 최우선’이 장기집권 원동력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의 원동력은 ‘경제’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장기 집권의 비결에 대해 ‘경제 최우선’과 ‘경제상황의 대폭 개선’을 거론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문예춘추’ 12월호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1차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1차 정권 때 방위청의 성(省) 승격,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 개정 등 보수색 짙은 정책들을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하면서 단명을 자초했다. 그러나 2차 정권에선 ‘아베노믹스’에 따른 경제 성과를 앞세우면서 개헌 등 보수ㆍ우경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에선 아베노믹스와 관련해 “대기업ㆍ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서민들의 소득은 늘지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低)와 확대재정으로 기업실적이 개선됐고 주요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2차 정권이 출범한 2012년 12월 1만230대에서 19일 기준 2만3,000대로 상승했다.
경제성장률은 2012년 1.5%에서 2013년 2.0%를 기록한 이후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2012년 4.3%에 달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완전고용에 가까운 2.4%를 기록할 정도로 나아졌다.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을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도 2012년 0.80에서 지난해 1.61로 상승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보다 일할 사람이 필요한 직장이 더 많다는 뜻으로, 고용 훈풍은 20~30대의 지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당 안팎의 ‘아베 1강’ 구도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안정은 2차 정권 이후 6차례의 중ㆍ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발판이 됐다. 아울러 2009년~2012년 민주당 정권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대처에 보여준 난맥상으로 아직까지 야당이 자민당에 필적할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어부지리가 됐다. 지난 15~17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여론조사에선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7%, 국민민주당은 1%에 불과했다.
자민당 내 ‘아베 1강(强)’ 구도도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고 있다. ‘포스트 아베’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가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3연임ㆍ9년’인 당 총재 임기 규정에 따르면, 현재 3연임째인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만 재임한다. 그러나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공개적으로 ‘아베 4연임’을 거론하는 등 4연임은 당규 개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다.
◇고개 드는 장기 집권의 그늘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의 그늘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19일 도쿄(東京)신문이 “정치적 유산은 없이 장기집권의 폐해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지난 9월 개각에서 임명된 스가와라 잇슈(菅原一秀) 전 경제산업장관과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전 법무장관이 각각 금품 제공과 부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옷을 벗었다. 아베 총리도 세금이 투입된 ‘벚꽃을 보는 모임’에 후원회 인사들을 대거 초청한 것이 드러나면서 ‘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 논란이 2017년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은 사학스캔들에 이은 정치자금 스캔들로 번질 기미를 보이자, 15일부터 취재진의 질문에 적극 응대하는 등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아베 총리는 남은 임기 동안 정치적 유산을 남기기 위해 개헌과 ‘전후 외교의 총결산’을 위해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진력할 예정이다. 다만 개헌은 다수 국민의 찬성과 국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서두르기보다 개헌집회 등을 통해 당내 단결부터 다지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외교에선 공고한 미일동맹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긍정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인 한국과의 관계 외에도 북한과의 납치문제 해결, 러시아와의 쿠릴 4개섬 반환을 둘러싸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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