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단독 인터뷰] 
 진실보다 환상 파는 시대, 조국 사태로 지식인 사회 한계 노출 
 與 진영논리 매몰 ‘진보 서사’ 해체 위기… 86세대 역할 다해 
 공지영 비판 받고 가슴 아파… 왜 그런 식으로 스스로 파멸하나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1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독립서점 아침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불의를 정의라 강변하는 저 거대한 집단의 맹목적인 힘 앞에서 완벽한 무력감을 느낀다.”

진중권(56) 동양대 교수가 최근 펴낸 ‘미학스캔들-누구의 그림일까’ 서문에 적은 말이다. 책은 201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을 덮어놓고 매도한 우리나라 미술계에 대한 고발장이다. 대작 논란이 불거진 뒤 화가, 평론가 등 미술계 인사들은 조영남에 대해 사기꾼이라 판정했다. 드물게 다른 목소리를 낸 사람 중에 미학자인 진 교수가 있었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저자성(Authorship)’의 관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하며 주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책에서도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신화화 된 화가 역시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게 맡겼다는 걸 사례로 들며, 손수 그리는 친작(親作)만이 숭고하고 영원불변한 예술의 본질이라는 미술계의 주장을 논박한다. 소신을 밝힌 대가는 컸다. 대중의 질타가 쏟아졌고, 여론에 편승한 전문가들은 진 교수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영남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진 교수는 또 한번 ‘소수 의견’을 냈다가 호되게 두들겨 맞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 화근이었다. 상식과 신념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한때 동지라 믿었던 사람들마저 그를 ‘배신자’로 내몰았다.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을 겪고 그는 86만명이 팔로어하던 트위터 활동을 접었다. 조국 사태로 입은 내상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절망스럽다고 했다. 1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독립서점 아침달에서 만난 진 교수는 “진보 진영이 이끌어왔던 서사가 상당 부분 타격을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게 드러났는데도 비판적 성찰을 하지 못하고, 또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발언을 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도 그렇고, 조국 사태 때도 식자층 자체가 무너졌다. 이번에는 내가 존경했던 사람들까지 이상해졌다. 조영남 사건은 우리 미술계의 ‘로고스(Logosㆍ보편적인 법칙에 따르는 분별과 이성)’ 문제가 컸다. 전문지식이 놀랍게도 부족했다. 잭슨 폴록이 물감을 뿌리거나,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 사인을 하는 현대미술은 화가가 손수 그리고 터치하던 인상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이다. 관념과 물리적 실행을 구분하는 게 현대미술의 한 특징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수십 년 전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창작의 관행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반면 조국 사태는 윤리적 ‘에토스(Ethosㆍ어떤 시대나 집단의 지배적 의식)’의 문제다. 첫 단추를 잘못 뀄으면 풀고 다시 꿰야 하는데 진영 논리에 빠져 그러지 못했다. 논리 대 논리의 다툼으로 가지 못하고, ‘100만이냐, 200만이냐’ 하는 원시적인 숫자싸움으로 빠져 들었다. 말이 안 통하니 남는 건 머릿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식자층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보나. 

“지식인들은 사회의 척후병(斥候兵)이다. 주력군이 진군하기 전에 그 땅이 위험한지 아닌지, 척후병이 안전하다고 확인이 되면 가는 거다. 그런데 (조국 사태에서 진보 지식인들은) 문제 없다고 끄떡 없다고 했고, 진영은 주력군을 몰아 넣었다. 그러다 적의 기습과 매복 공격을 당하고 후퇴한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문선대가 아닌데 ‘싸워라, 싸워라’ 부추기기만 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분야에서만큼은 진실을 말하는 게 직업윤리라고 생각하는데 조국 사태에서 많이들 지키지 못했다.”

 -극단적 진영 논리가 힘을 얻는 배경은 뭘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사실이 있으면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믿어버리면 그게 진실이 되는 세상이다. 대중은 점점 불편한 진실 대신 자기들이 듣고 싶어하는 환상을 요구하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나 라디오 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그 요구를 들어주는 매체다. 대중이 팟캐스트, 유튜브에 열광하다 보니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경쟁해야 하는 기성 언론도 따라가는 현실이다. 팔리지 않는 사실보다, 팔리는 환상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비판적 사고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언론을 찾는 독자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구독료에 의존하는 작은 매체들은 이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정당도, 시민단체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당장 민주당만 해도 이른바 ‘문파’(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와 틀어지면 공천을 받지 못하니까 의원들이 눈치를 보느라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 아닌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1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독립서점 아침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조국 사태로 진보 진영에 실망한 국민들이 적지 않다. 

“보수 진영과는 다른 새로운 서사를 기대했는데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에서 들고 나온 논리가 ‘유죄 나오기 전에는 탄핵해선 안 된다’였다. 민주당도 똑같았다. 청문회는 후보자의 윤리적 덕성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부합하는지 따져보는 자리다. 그런데 ‘유죄 나오기 전에는 무죄’라는 얘기만 했다. 조국 사태에서 불거진 공정성은 진보 보수를 떠나 누구나 지켜야 할 룰이자 윤리다. 이를 지키지 못했기에 진보 진영이 이끌어온 서사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왜 그런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고, 잘못된 게 드러났는데도 왜 번복이 안됐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데 그런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반성을 해야 혁신할 수 있는데, 그런 메시지를 내는 메신저를 공격해 무력화시키다 보니 반성 자체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진 교수에 대한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는데. 

“가슴이 아프다. 그분의 발언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내가 아니라 공지영에 대해 더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파멸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자신이 배려해야 한다.”

 -문재인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만큼 책임감이 더 막중한데. 

“보수는 한국 사회의 주요한 서사를 지닌 주류였다. 한국전쟁 때 북한 공산군과 싸워 반공전사가 됐고, 박정희 밑에서 산업전사로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 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 정권이 아무리 못해도 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건 보수가 한국 사회의 비주류가 됐다는 의미다. 보수가 새로운 서사를 못 찾는 건 태극기부대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도 무조건 옹호만 하는 ‘조국기부대’(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열성 지지자들을 태극기부대에 빗댄 조어)에 발목 잡혀 있다. 이들과 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간층은 돌아설 수밖에 없고, 촛불정권의 정당성도 불신 받을 수밖에 없다. 뼈를 깎는 반성, 확실한 혁신, 촛불정권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을 타협하지 않고 밀고 나가면 좋겠다고 권유하고 싶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86그룹 교체 여론이 터져 나온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세대론을 믿지 않았다. 386만 썩었나. 그 위 세대도 아래 세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386세대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느꼈다. 1970년대에 이미 40대 기수론이 나왔고, 한나라당도 젊은 피가 주축이 된 소장파가 있었다. 그런데 요새 청년 정치인들은 마스코트로 쓰고 버려진다. 86세대 우리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한다.”

 -진보 진영의 새로운 가치를 제안해본다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은 다 깨졌고, 이제는 나 하나 변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에 ‘세상은 안 바뀌더라도, 우리는 바뀌겠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너는 얼마나 잘 살았길래 그러느냐’는 질문이 (마음에) 꽂히더라. 내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 학생들에게 요새 이런 말을 한다. ‘어려운 사람들 보면 같이 싸워라. 성공하면 네 덕이라 생각 말아라’ 등등. 사회를 망쳐버린 세대가 훈계하는 게 가증스럽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

 -직접 현실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더 잘하게 만드는 거. 그게 정치의 역할이라면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은 그 정도면 됐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