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사진제공=산림청

주말에 오래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뚝 떨어진 기온에 바람이 몹시 찹니다. 이번 비바람에 마지막 고운 빛이 한창이었던 은행나무마저 모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은 비를 머금고 우리가 걷는 길목에 노란 카펫처럼 깔려 있네요. 가을은 참 여러 모습으로 끝까지 아름답습니다. 제가 일하는 수목원에서 올해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깊은 단풍빛의 주인공은 메타세쿼이아입니다. 특히 육림교 다리에는 왕숙천 양옆으로 이 나무의 그윽함이 눈길과 마음을 함께 잡아주네요. 올해엔 이곳을 지나는 걷는 길도 생겨 발길마저 잡을 수 있게 되어 흐뭇합니다.

메타세쿼이아로 아름다운 길이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차를 막고 사람들에게 돌려준 그 유명한 담양, 가장 긴 가로수길이라는 창원 등 전국의 곳곳에 많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조금은 특별한 이 나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져 이토록 아름다운 늦가을 정취(아니 메타세쿼이아는 가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침엽수이면서도 낙엽이 져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무 모양, 봄을 알리는 새순, 시원한 여름빛까지 사시사철 매력이 넘치지요)를 안겨 주기까지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퍼져나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사진제공=양형호

우리는 이 나무도 은행나무처럼 살아 있는 화석식물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무 역시 함께 번성했던 시대의 생명들은 모두 멸종하여 화석으로만 남았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천 년 이상을 심었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흔적을 남긴 은행나무와는 달리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다가 1941년 화석이 먼저 발견되어 중생대 백악기에서 신생대에 걸쳐 북반구에 번성하다 멸종된 식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즈음 중국에서는 중일전쟁으로 깊은 산골까지 사람들이 들어갔다가 시추안과 후베이성 경계에서 신목이라고 여겨지는 나무의 존재를 임업공무원이 학자에게 알리게 되었고, 1943년 난징의 학자에게 보내져 주목을 끌었으나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1946년 베이징의 첸 박사 등에 의해 보내진 표본에 의해 1941년 화석으로 발견된 멸종되었다던 종이 살아 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소식은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게 했고, 이듬해 미국의 아널드수목원에서 중국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그 나무가 자라는 계곡에서 씨앗을 수집하고 실험하여 전 세계의 식물원과 수목원에 보내져 퍼지게 된 것이지요. 일본에서는 이 종을 보급하기 위한 기금도 운영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는 50년대에 들어왔고 묘목으로 키워져 70년대 가로수 심기 운동이 한창일 때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 대부분이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들은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상의 생명들을 사라지게 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문제성 있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이 나무한테만은 사라질 위기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고, 나무들은 다시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을 풍광과, 목재와 약재 등등 유ㆍ무형의 가치를 나누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부디 우리의 노력으로 사라지는 생명보다 살아 남는 생명들이 많아지는 그날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히 이로울 그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을 위한 오늘의 작은 실천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는 겨울 초입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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