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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무대’ 김무성의 마지막 시간

입력
2019.11.1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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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ㆍ유승민 ‘보수 빅 텐트’에 정가 시끌

‘총론 지지, 각론 이견’에 ‘빈텐트’ 회의론도

영욕의 정치인생, ‘대장’ 역할로 마무리하길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연구모임 '열린 토론, 미래: 대안찾기'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21대 총선 불출마 뜻을 확인하며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는 보수대통합을 위해 한국당 중진들이 헌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연구모임 '열린 토론, 미래: 대안찾기'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21대 총선 불출마 뜻을 확인하며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는 보수대통합을 위해 한국당 중진들이 헌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에겐 ‘무대’라는 별칭과 함께 ‘30시간의 법칙’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별칭은 ‘무성 대장’의 약어로 호방하고 선 굵은 그의 성격을 뜻하고, 꼬리표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내린 결단이 30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비아냥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참패 직후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보수의 최대 가치”라며 “분열된 보수 통합과 새로운 보수 정당의 재건을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고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상도동 적통’으로 당 대표를 지낸 6선 의원의 결단인 만큼 반향이 클 법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나댄 흔적은 찾기 어려웠고, 불출마 선언도 ‘30시간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그가 지난달 말 당내 의원 연구모임에 참석해 “통합 얘기만 나오면 꼭 방정맞은 몇 X이 툭 튀어나와 재를 뿌리는 독설을 퍼붓는다”며 ”탄핵 잘못을 주장하고 ‘친박’ 간판 걸어 어떻게 선거에 이기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미래당 ‘변혁’ 모임을 이끄는 유승민 의원이 먼저 ‘탄핵의 강을 건너고 개혁보수 가치로 새집을 짓자’는 보수 통합 3원칙을 제안해 모처럼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당내 몇몇 골수 진박이 ‘구역질’ 운운하며 고춧가루를 뿌리는 등 방정을 떤다는 것이다.

이 질책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황 대표는 전격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가치를 받드는 모든 분과의 정치적 통합 추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 “탄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과거로 가는 통합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통합이 돼야 한다”며 보수 통합을 논의할 협의체가 구성되면 자신과 한국당이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의 제안에 대해 여러 해석과 뒷말이 나오고 통합의 방식과 내용, 빅 텐트의 역할과 가치 등 핵심 사안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는 비판도 뒤따르지만 길 잃은 보수 통합 논의에 큰 모멘텀이 마련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유 의원이 “통합 3원칙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면서도 “보수 재건을 위해 3원칙만 지켜진다면 더 따지지도 요구하지도 않겠다”고 말한 근거다.

이런 상황을 맞고 보니 김 의원이 말만 던진 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유 의원의 선제안과 황 대표의 맞제안, 두 사람의 화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김 의원 손에서 기획됐다는 얘기까지 나오니 말이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김 의원이 이런 국면을 예상했다는 듯 광폭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는 엊그제 당내 세미나에서 재차 “품위 있는 퇴장으로 보수 통합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바람을 잡았다. 김태흠 의원의 주장으로 논란을 낳았던 중진 용퇴론과 대선 주자급 험지 출마론에서 한술 더 떠 “책임 있는 중진들의 소명은 자신을 죽여 나라를 살리는 것”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3김처럼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 지도자에게도 통합은 늘 고난도 게임이었다. 리더십이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경쟁하는 요즘 정치에서 그것은 헌신적 추진력과 예술적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고 깃발을 들기는 쉬워도, 개개인의 이해가 엇갈리고 집단이 충돌하는 지뢰가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내려놓겠다’ 해도 주도권 다툼은 피할 수 없다. 박근혜도 넘어야 하고 안철수도 극복해야 한다. 황 대표와 유 의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사이에서 통합의 대의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는 것에 비례해 정치적 잡음이 커지고 심지어 “빅 텐트가 아니라 결국 빈 텐트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이 싹트는 것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 ‘대장’ 김 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탄핵 국면의 ‘철새 처신’으로 정치적 자산은 많이 잃었지만, 그로선 영욕의 정치 인생을 벌겋게 마감할 기회를 만난 셈이다. 정치판에서 가치 없는 세력은 허망하고 세력 없는 가치는 공허함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실패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황 대표와 유 의원을 설득하고 주변의 잡소리를 잠재우는 ‘무대의 시간’은 길지 않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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