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나 내나’를 연출한 이동은 감독은 “상처에 새 살이 돋듯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억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명필름 제공

어느 집이든 가족 사진 속 얼굴들은 서로 닮았다. 생김새와 표정, 취향, 행동, 옷 안에 숨겨진 발가락까지도. 그러나 닮았다는 건 같음이 아니라 ‘다름’을 전제로 한다. 가족이어도 그 구성원 각자는 엄밀히 다른 개별 존재다. 영화 ‘니나 내나’(상영 중)를 연출한 이동은(41) 감독은 “출발지는 같지만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관계”가 ‘가족’이라고 말한다.

미정(장혜진), 경환(태인호), 재윤(이가섭) 삼남매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오래 전 가족을 떠난 엄마. “보고 싶다”는 한 문장이 적힌 편지에 삼남매는 당황하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러 경남 진주에서 경기 파주까지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니나 내나’는 ‘너나 나나 다 비슷하다’는 의미인 경상도 방언이다. 이 감독은 ‘환절기’(2018)와 ‘당신의 부탁’(2018)에 이어서 ‘니나 내나’까지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이 감독은 “가족이라는 끈 안에는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얽혀 있다”며 “‘니나 내나’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길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극중 미정은 동생들에게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며 살아왔다. 곧 아빠가 되는 둘째 경환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가족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재윤은 말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겐 사고로 막냇동생을 잃은 아픔이 있다. 삼남매는 함께 떠난 길 위에서 가슴 깊이 묻어둔 상처와 마주한다.

“상처 주기는 쉽고 화해하기는 어려운 존재가 가족 같아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가족이라는 울타리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칼국수를 먹어도 젓가락질은 모두 다른 모습이 아름다운 것처럼요.”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출발지에 다다르기 전에 삼남매는 자신들의 삶으로 흩어진다. 서로 다른 종착지가 각자의 또 다른 가족이라는 사실이 인상 깊다.

삼남매와 맏이 미정의 딸까지 4인 가족은 오래 전 떠난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명필름 제공

이 감독이 ‘니나 내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2014년이다. 영화에는 세월호 참사의 그림자도 드리워 있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은 감정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것밖에 없었죠. 그게 늘 마음의 짐이었어요. 그해 여름, 세월호 유가족의 심리 치료를 돕고 있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 말씀이 잊히지 않아요. 상처를 치유하거나 위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그래서 그분은 ‘휴지 사라’ ‘공과금 내라’ ‘내일 어디를 좀 다녀오라’라며 유가족에게 일상에서 수행할 과제를 준대요. 현재에 집중하게 해서 좋은 기억을 만들고, 상처에 새 살을 돋게 하는 방식인 거죠.”

전작 ‘당신의 부탁’이 남편을 잃고 남편의 아들과 가족이 돼 가는 주인공을 그려내며 상실과 애도를 이야기했다면, ‘니나 내나’는 상실로 인한 상처와 새로이 맞이할 기억을 들여다본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좋은 기억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담았습니다.”

이 감독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기업과 영화사에서 일하다 명필름랩 1기로 연출에 입문했다.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써 놓은 이야기들로 불과 2, 3년 사이에 영화 3편을 내놓았다. 최근 구상하고 있는 영화는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감독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들었다”며 “무기력하고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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