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ADT캡스 경호팀장
여성단체협의회 ‘2019 여성 1호상’
“예년 수상자들이 쟁쟁한 분들이라 기대를 안했거든요. 여성이 할 수 있는,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리라는 의미로 (이 상을) 받겠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만난 이용주(40) ADT캡스 경호팀장은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2003년 보안업체 ADT캡스에 국내 ‘첫 여성 경호원’으로 입사한 그는 5년만인 2008년 ‘여성 경호팀장’에 오르며 주목받았고, 이날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선정한 ‘2019 여성 1호상’을 수상했다.
이 팀장의 학창시절 꿈은 플루티스트. 한데 고등학생 때 늦깎이 사춘기 겪으면서 방황하던 중 우연히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경호원 인터뷰 장면을 보고 전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고 3때 체대입시를 준비했지만, 경기도 육상선수였던 어머니의 운동신경을 이어 받아 용인대 경호학과에 한 번에 합격했다. “대학 입학보다 졸업 후 진로가 더 걱정이었죠. 당시에는 70명 중 3명만 여자를 뽑았어요. 제 위로 여자 선배가 전 학년 통틀어 5,6명뿐이었는데 전공 살려 취직한 분은 없었어요. 저도 체육교사, 군인 같은 다른 분야 취직도 같이 준비했죠.”
이 팀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당시 ADT캡스는 국내 보안업체로는 드물게 자사 임원 경호가 아니라 “외국 VIP 경호로 매출을 일으키는 경호팀”을 운영했고, 모기업인 미국 타이코그룹(지난해 SK텔레콤이 인수)은 ‘여성 CEO가 많아지는 현실을 반영해 여자 경호원을 뽑으라’고 요구했다. 세 차례 공모 끝에 대학졸업을 앞둔 이 팀장이 뽑혔다. “(남자 동료들이) 탐탁지 않아했죠. 싫다기 보다는 불편한 거죠. 한 번도 여자랑 일해본 적 없어서. 차 안에서 12시간씩 대기하거나 같은 숙소 쓰며 합숙해야 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으니까요.” 이 팀장은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오래 남았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남모르는 고충도 많았다. 여성 정장에는 안주머니가 없어 업무용 펜이나 수첩을 넣을 곳이 없었고, 와이셔츠에 비해 짧은 블라우스는 몸을 숙일 때마다 바지에서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다. 이태원에서 경호용 정장과 블라우스를 일일이 따로 맞췄다. 생리휴가는 언감생심, ‘그 날’에 의뢰인 일정에 맞춰 12시간대기를 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는 “예민할 때는 밥을 먹지 않는다. 생리적 고민은 장이 약한 남자경호원들도 마찬가지”라며 “화장실을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직업이라 의뢰인이 장거리 이동할 때면 대부분 금식한다”고 말했다.
‘여자가 무슨 경호원을 하느냐’ 같은 의뢰인의 막말을 듣는 건 예삿일이었고, 초고속 팀장 승진 후에는 회사에서 ‘쌈닭’으로 불렸다. “경호팀 내부는 군대문화처럼 돌아가니까 나이 많은 남자 팀원들이 저를 팀장으로 대했어요. 그런데 다른 부서에서 아무도 저를 팀장이라고 안 불러주더라고요. 협조도 안 해주고. 그래서 엄청 열심히 일했어요. 연말이면 결과 들고 당돌하게 사장실에 들어갔어요. 200%성과 냈고 이런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고요. 팀원들도 ‘팀장 바뀌니까 이런 혜택도 있네’하고 느껴야 절 따르니까요. 매년 바꿔가는 게 있었고, 그런 과정이 재밌었어요.”
이런 이 팀장도 둘째를 낳은 지난해에는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이가 하나일 때만 해도 ‘일, 육아, 가사’의 저글링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둘이 되고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니 몸은 두 배가 아니라 2제곱이 바빠졌다. 결국 친정 근처로 이사해 육아 일부를 베이비시터와 친정어머니가 맡으며 일단락됐다. 새벽에는 남편이 수유와 육아를 맡고, 이 팀장은 한 시간 빨리 출근하는 탄력근무제를 써서 5시에 퇴근한다. 이 팀장은 이제 “회사를 오래 다니니까 제가 했던 경험을 조언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둘째 임신했을 때 회사에 저 말고 임신한 직원이 6명 더 있었는데, 팀원이었거든요. 눈치 보여 임신 단축근무제도 못 쓰길래 제가 신청하면서 같이 쓰자고 격려했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진 세태도 경험한다. 이 팀장은 “예전에는 해외 기업인, 국빈,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경호 문의가 많았는데 요즘은 아동폭력, 학교폭력, 스토커나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일반인 상담도 많다”고 말했다. 이 팀장이 시간 날 때마다 호신술 강연 등 외부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다. “늘 ‘경호는 서비스’라고 해요. 최근에는 의뢰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게 경호 업무가 됐습니다. 의뢰인 건강, 스케줄 관리를 전반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에 경호팀에 여자 경호원을 넣어달라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제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여자 경호원, 여자 경호팀장을 더 뽑을 거란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제 분야에서 묵묵히, 여성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리겠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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