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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호빵론

입력
2019.11.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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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고 하찮은 단편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였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니까. 그만큼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이 작고 하찮은 단편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였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니까. 그만큼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게티이미지뱅크

아주 오래전 나는 영화를 꿈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만 했지 만드는 과정이나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래서 영화아카데미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나름 꽤 힘든 과정을 거쳐 입학을 하자 처음으로 과제가 주어졌는데 다섯 컷만으로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들을 보기만 했던 내게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다섯 컷 분량에 맞는 소재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오랜 고심 끝에 만든 이야기가 바로 ‘호빵론’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식탁 위에 호빵 두 개가 어머니의 쪽지와 함께 놓여 있는 것이었다.

‘간식으로 호빵 두 개를 두고 가니 동생과 하나씩 나눠 먹어라.’

배가 출출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몫인 호빵 하나를 먹는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갈등하던 주인공은 어머니의 말씀을 어기고 동생 몫의 호빵을 먹어 버린다. 그리고 증거를 인멸한다. 하지만 얼마 후 돌아온 동생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어머니의 쪽지를 발견하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진다. 당연히 동생은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둘의 입장 차이였다. 동생의 주장은 이러했다.

‘오빠가 둘을 먹었으니 나도 두 개를 먹어야지. 그러니 당장 마트에 가서 호빵 두 개를 사와.’

하지만 오빠의 입장은 달랐다.

‘본래 하나는 내 거였으니 내가 배상할 건 네 몫인 호빵 하나야. 그러니 하나만 사다주겠다.’

둘은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결국 결론을 못 내린다. 이후 두 사람은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둘로 의견이 갈라진다. 오빠의 주장이 옳다는 의견과 동생의 편을 드는 의견. 그리고 이들 역시 서로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결국 공부하느라 책상에서 잠이 든 동생을 보게 된 오빠가 호빵 두 개를 몰래 남겨 두고 가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내가 이 작고 하찮은 단편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였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니까. 그만큼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얼마 전 오랜 친구 한 명이 우울한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결별은 예상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지극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갖고 있었으니까. 결국 서류에 도장을 찍은 친구는 허탈하고 개운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런 경우 친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술을 마셔 주는 것뿐이다. 사실 이것은 축하를 할 수도, 그렇다고 위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멋쩍게 술잔을 기울이던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낙타를 쓰러뜨린 마지막 짐이 뭐였니?’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글쎄. 끊임없이 나만 양보를 해야 한다는 거?’

‘제수씨는 뭐래?’

‘그 친구는 자기가 양보를 한다고 생각해. 결혼이란 끝없이 이어지는 두 개의 평행선인거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오래된 단편영화가 생각났다.

‘내가 만든 단편영화 중에 호빵론이라는 게 있어.’

나는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물었다.

‘누구 말이 맞는 거 같니?’

그러자 친구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결혼이 호빵론이구나.’

우리는 허탈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때 술 취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 법안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던 여야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고성이 오가던 회의장은 결국 야당의 거부로 법안을 상정하지도 못한 채...”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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