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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경계하라, 가짜뉴스는 ‘옆’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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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경계하라, 가짜뉴스는 ‘옆’에서 시작된다

입력
2019.11.07 18:00
수정
2019.11.07 19: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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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4세기 중반부터 유럽 지식인들에겐 실체는 없지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나무가 있었다. 인도에서 자란다는 호리병박 모양의 과일 나무로, 열매 안에 작은 새끼 양들이 들어 있는데 껍질을 벗겨 먹어봤더니 그렇게 맛이 좋았다고 한다. 세상에 동식물이 합쳐진 혼종은 그때도,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대의 과학자들은 ‘타타르의 식물성 양’이란 이름까지 지어주며 400년 간 이 거짓 정보가 퍼지는데 동조했다. 이 나무를 직접 눈으로 봤다거나, 열매를 따 먹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들었다고 했을 뿐이다.

‘가짜뉴스의 시대’는 거짓 정보가 인간의 신념을 어떤 방식으로 조작하는지,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왜 신념을 바꾸지 않는지의 의문을 수학적 모형 등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게임이론가와 물리학자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부부 교수가 함께 썼다.

두 사람은 책의 상당 부분을 과학계가 거짓정보에 휘둘려온 역사를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타타르의 식물성 양’이란 나무에 속아 넘어갔듯, 현대 과학자들의 이성적 판단력 역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왜 하필 과학자일까. 과학자들은 데이터와 수치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훈련을 해온 집단이다. 그런데도 이들 조차 자신의 신념이 거짓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난 뒤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릇된 신념인줄 알면서도 말이다.

‘타타르의 식물성 양’으로 불린 가상의 식물
‘타타르의 식물성 양’으로 불린 가상의 식물

책은 거짓 정보를 신념으로 채택하는데, 과학적 증거보다는 주변 사람의 반응이 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가는 당신이 누구와 알고 지내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들은 동조와 양극화 이론 등을 동원한다. ‘신뢰’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판단을 꽤 중시한다. 충분한 데이터와 증거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배척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사진과 비교하면 훨씬 적었다. 한 눈에 봐도 차이가 확연하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 때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상 최대 규모로 모였다”는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다. 의심이 들더라도 잠시다. 괜히 딴 소리를 했다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느니, 그냥 묻어가는 쉽고 편한 길을 택한다.

양극화 된 사회에서 가짜뉴스는 날개를 단다. 신념이 다른 사람들 간의 불신이 클수록 거짓 신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의 비율 역시 커진다고 책은 설명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집단 사이에선 아무리 옳은 신념의 증거를 대더라도 상대는 경청하기 보다는 밀어 내기 바쁘다. 정치인들과 기업들이 대중에게 자신들 입맛에 맞는 편향된 정보들만 취사선택해 제공하는 것도, 상대의 신념을 격파하는 것보다 내 편의 신념을 강화하는 전략이 더 쉽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가짜뉴스 근절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들이 보기에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겨 거짓 정보를 걸러낼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시효를 다했다.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특히 과학계와 언론이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공통의 합의를 이룬 신념에 반하는 이론이나 실험 결과를 동일 비율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틀린 방향에 무게를 실어주는 꼼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회적으로 위험성을 야기할 연구 결과에 대해선 높은 기준의 ‘공표 규범’을 적용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가짜뉴스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 데 공을 들인 것에 비해 대안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저자들도 정치인의 역할, 또 다른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신념을 견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정보를 끊임 없이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깨달음 하나만은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가짜뉴스의 시대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ㆍ박경선 옮김

반니 발행ㆍ344쪽ㆍ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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