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두 달 남았지만 입법 논의 실종… 졸속 처리 우려도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가운데)씨가 변호인단과 함께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하다.”

7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또 나왔습니다. 입영을 거부해 수감 위기에 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정식으로 열린 셈이죠.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서 국민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된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창원지법 형사1부(부장 류기인)는 이날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승헌(35)씨 등 ‘여호와의 증인’ 신도 18명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날 1심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 2명에 대해서도 원심 판결을 깨고 역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들이 병역거부 이유로 내세운 종교적 신념이 병역법 88조가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날 무죄 판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특히 오씨는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종교적,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처음으로 받아 낸 당사자입니다. 오씨는 지난 2013년 육군 39사단에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를 받았지만 따르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1월 상고심에서 대법관 9 대 4 의견으로 원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죠.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88조 1항에 규정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2004년 8월 대법원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이후 14년여 만에 판례가 바뀐 것이죠. 7일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결 이후 나온 실질적인 변화인 셈입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심판을 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오씨 등이 취할 수 있는 다음 선택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처벌은 면했지만 양심을 지키면서도 국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대체복무 대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앞서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6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행 병역법 5조 1항은 ‘병역의 종류’로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 5가지만 규정해놓고 있어 ‘기타 대체복무’가 없습니다. 특히 헌재는 올해 말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국회에 요청했지만 관련 논의는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률안은 ‘36개월간 교정시설 합숙근무’를 골자로 하는 정부안을 포함해 10건이나 됩니다. 이들 법률안은 대체복무 기간이나 복무 방식과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정도입니다. 기간만해도 36개월(정부안), 40개월(장제원 의원), 44개월(김학용 의원), 60개월(김진태 의원) 등으로 천차만별이죠. 쟁점이 산적했지만 1년 동안 이렇다 할 논의 없이 데드라인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거죠.

시한을 넘기면 조항이 효력을 상실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병역 의무를 부과할 수 없게 되는 법적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뿐 아니라 현역병, 예비역 처분까지 지장을 받게 되는 거죠. 이 때문에 어떻게든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도 국회는 꿈쩍 않고 있는 거죠. 병역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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