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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1명이 200여명 떠맡는 외국인보호소 “이란인 사망은 국제적 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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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1명이 200여명 떠맡는 외국인보호소 “이란인 사망은 국제적 타살”

입력
2019.11.06 18:5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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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단체 법무부에 대책 마련 촉구 

그림 1지난달 18일 경기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에서 사망한 이란 출신 50대 남성 A씨의 영정 사진.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와 난민인권네트워크, 아시아의 친구들 등 시민단체들은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법무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박지윤 기자
그림 1지난달 18일 경기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에서 사망한 이란 출신 50대 남성 A씨의 영정 사진.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와 난민인권네트워크, 아시아의 친구들 등 시민단체들은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법무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박지윤 기자

“포로수용소만도 못한 조건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보호 없는 구금을 멈춰주세요.”

지난달 중순 법무부 산하 경기 화성시의 외국인보호소에 1년간 구금됐던 이란 출신 50대 남성이 보호소의 미흡한 조치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인권단체들이 6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와 난민인권네트워크, 아시아의 친구들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법무부는 공식 사과하고 즉각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등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 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것은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의료 현실 때문이다. 외국인보호소에는 260여 명의 외국인들이 구금돼 있지만, 이들을 전담하는 의료인력은 전문의 1명에 간호사 1명뿐이다. 의사 혼자 하루 평균 55건의 진료를 한다. 주말이나 야간에는 상주하는 의료 인력이 아예 없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1년간 장기 구금됐다 사망한 이란 출신 남성 A씨는 숨지기 약 한달 전부터 음식을 전혀 삼키지 못했다. 하체에 심한 부종이 나타나는 등 심각한 건강이상 증세를 호소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외국인들을 접견하고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A씨는 지난해 10월 보호소에 처음 입소할 때만 해도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며 “1년에 한번 소독 작업을 하는 것이 보호소 내 위생관리의 전부다 보니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호소의 진료기록부에 따르면 A씨는 입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질환을 앓았지만 외부 진료는 받지 못했다. 2012년에도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던 몽골인 외국인이 보호소에서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대로 방치돼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란 출신 50대 남성 A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가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2016년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박지윤 기자
지난달 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란 출신 50대 남성 A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가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2016년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박지윤 기자

외국인보호소 내 의료 시설은 ‘학교 보건실’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선 교정시설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260여 명의 외국인들을 돌보고 있다. 여수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나 청주외국인보호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각 시설마다 150명에서 많게는 200여 명의 외국인이 구금돼 있지만 상주 의료인력은 전문의 1명, 간호사 1명에 그친다. 원래대로라면 공익근무요원인 공중보건의도 1명씩 배치돼야 하나 2017년 4월 보건복지부가 배정을 중단해 2년째 공석이다. 최소 인력이지만 이마저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의료지원을 위한 전문 통역도 없어 의료진과 환자간 소통도 쉽지 않다는 게 아시아의 친구들 설명이다.

김 대표는 “국내 보호소 3곳 모두 말만 보호소일 뿐 과거 교도소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보니 위치가 외지다”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다수로 상대해야 해 의료진 사이에서도 기피 1순위”라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는 총 1만4,979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공중보건의가 아닌 의료진은 주말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사 1명이 하루에 약 55건씩 진료를 한 셈이다. 2016년에는 2만 184건, 2017년에는 1만 3,892건에 달했다. 김 대표는 “구금 외국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환자가 의사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1, 2분 남짓”이라며 “의사 본인도 진통제나 수면제, 혈압 조절제 등 상비약을 처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함을 토로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수용자들이 다수인 교정시설에 비해 의료설비도 턱없이 열악하다.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을 단기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인 탓이다. 김 대표는 “단기수용시설이라고는 하나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까지도 장기로 구금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1년간 구금됐던 이란 출신 5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난민 인권단체들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법무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박지윤 기자
지난달 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1년간 구금됐던 이란 출신 5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난민 인권단체들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법무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박지윤 기자

담당의가 소견서를 작성해 상급 병원 진료를 요청해도 보호소 측에서는 ‘지원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늑장을 부리기 일쑤다. A씨도 지난달 14일 오전부터 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상급병원으로 옮겨졌고, 4일 뒤 숨졌다.

게다가 외부 진료비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연고가 아예 없거나 재산이 한 푼도 없는 경우에 한해 극히 일부만 국비 지원을 받는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외국인들은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병원에 입원한지 4일 만에 사망한 A씨의 진료비는 무려 2,000만원에 달했다. 김 대표는 “중대한 질병이 있을 때 보호소에서 나가는 ‘보호해제’도 300만~2,000만원이나 되는 보증금을 내야만 가능하다”며 “보호소에서 병을 얻은 상태로 보호해제를 받은 직후 사망한 외국인들은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비판에 법무부는 “24시간 3교대 체제로 전환해 의료인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 4월부터 화성, 청주, 여수에 심리상담사 1명씩을 한시적으로 채용하긴 했으나, 상시적으로 운영하려면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에 참가한 이들은 A씨의 사망이 ‘국제적 타살’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심지어 형사피의자를 구속할 때도 도주우려나 추가 범행 가능성 등을 폭넓게 고려하는데, 외국인들은 ‘미등록 체류자’란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구금하고 있다”며 “이는 철저히 인종차별적인 행정조치이며 기본권 침해행위”라고 지적했다. 김어진 난민과함께공동행동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젊은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용허가제’ 같은 정책을 시행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들이 눌러앉는 것을 막기 위해 난민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며 “말 그대로 ‘쓰고 버리겠다’는 이중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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