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웰 차관보, 고위급 연쇄 접촉… 지소미아 압박 가능성도
드하트 분담금 대표, 협상 개시 전 분위기 점검 나선 듯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보ㆍ경제를 막론하고 ‘중국 견제용’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내년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위한 포석에도 적극성을 띠는 모습이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강경화 장관이 6일 미 국무부 소속 키이스 크라크 경제 차관과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접견한다”며 “스틸웰 차관보는 해당 접견에 이어 조세영 1차관을 예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순방 일환으로 일본과 태국 등을 거쳐 이날 한국을 찾은 스틸웰 차관보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와의 생산적인 만남을 통해 (한미) 동맹이 이 지역 평화와 안보의 주춧돌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박 3일 일정인 방한 기간 동안 정석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청와대 고위 당국자 등과도 연쇄 회동할 계획이다.

핵심 의제는 인도ㆍ태평양 전략 실현을 위해 한미가 어떤 식으로 공조할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4일 스틸웰 차관보 방한 계획을 발표하며 한미동맹 강화와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한국 신남방정책 간 협력 등이 논의될 거라고 밝혔었다.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과거보다 한층 고강도일 전망이다. 현재 미국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동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중국의 주도로 4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타결됐기 때문이다. 같은 날 미 국무부가 인도ㆍ태평양 지역 관여를 최우선 사안으로 부각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이를 염두에 뒀으리라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6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도 신남방정책과 인도ㆍ태평양 전략 간 연계가 비중 있는 의제로 다뤄질 듯하다. 한미 간 경제협력 사안이 논의되는 이 회의에는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크라크 차관이 양측 수석 대표로 나선다. 한미는 이번 회의를 통해 그간 협력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방향을 정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한다는 방침이다.

미ㆍ중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기 어려운 우리 처지에서는 미국의 압력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이번 경제 대화를 통해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더 깊숙이 발 담그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신남방정책과의 접점과 협력 시너지를 모색하려는 것일 뿐 발 담그는 형태는 아니다”라며 “원칙이 맞으면 어떤 지역 연계 구상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기본 입장”이라고 대답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효력 상실(23일 0시)을 앞두고 이뤄지는 방한인 만큼 한국 당국자들을 만난 스틸웰 차관보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거듭 촉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방일 중인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는) 미국에도 일본에도, 그리고 한국에도 유익하다”고 말했는데, 방한 때 한국 정부를 상대로 종료 결정 재고를 요청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거라고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해석했다.

제임스 드하트 미국 측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수석대표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드하트 분담금 협상대표도 방문… 협상 전 분위기 점검 나선 듯

한편 제임스 드하트 미국 측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수석대표도 비공식으로 한국을 찾았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의 체결을 위한 3차 회의를 앞두고서다.

5일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이날 오후 입국해 8일까지 3박 4일간 한국에 머무는 드하트 대표는 방한 기간 카운터파트인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비공식 만찬을 하고 국회와 언론계 인사들도 만날 계획이다. 주한미군 관계자와의 회동 일정도 잡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방위비 협상 대표 간 만남은 지난달 미 호놀룰루에서 진행된 11차 협상 2차 회의 이후 처음이다. 3차 회의는 11월 중 한국에서 열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한미가 조율 중이다.

방위비 협상 진행 중 미측 대표가 회의 일정과 무관하게 한국을 찾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10차 협상 당시 미국의 티모시 베츠 대표가 한국을 비공식 일정으로 찾아 주한미군 실태와 분담금 운영 상황을 확인한 적이 있지만, 협상이 본격 개시되기 전이었다.

드하트 대표의 비공식 방한은 3차 회의에 앞서 국내 분위기를 살피려는 취지인 듯하다. 드하트 대표의 방한 일정이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한국 신남방정책 간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일정과 겹치면서 미국 측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국회와 언론계 인사를 만나 미국의 분담금 인상 요구 취지를 직접 설명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측이) 연말 시한 내 타결할 요량으로 열심히 협상을 해보려고 하다 보니 서울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많지 않겠냐”며 “서울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합리적이고 공평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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