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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는 왜 계속 가사를 생각해야 할까?

입력
2019.11.0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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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는 관리감독자의 지위와 결정권이 고평가되는 반면, 가사에서 필수적인 관리와 판단과 조율은 능력이나 노동이 아니라 ‘잔소리’, ‘시키면 할 텐데’로 저평가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알아서 잘 하는 일은 그냥 하는 것이고, 남성이 누가 안 시켰는데 냉장고 청소라도 알아서 하면 아주 일등 신랑감에 살림왕이다. 이 현격한 차이는 안이하게 용인되어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에서는 관리감독자의 지위와 결정권이 고평가되는 반면, 가사에서 필수적인 관리와 판단과 조율은 능력이나 노동이 아니라 ‘잔소리’, ‘시키면 할 텐데’로 저평가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알아서 잘 하는 일은 그냥 하는 것이고, 남성이 누가 안 시켰는데 냉장고 청소라도 알아서 하면 아주 일등 신랑감에 살림왕이다. 이 현격한 차이는 안이하게 용인되어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주말, 피곤해 한숨 자려 누웠는데 부엌에서 소음이 들린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한참 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잠결에 짜증이 난다. 왜 남편은 침실 문을 닫지 않았나? 그리고 왜 굳이 지금 설거지를 하는가?

불만은 금세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남편은 문을 닫지 않는다. 1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는데, 제발 옷장 문 닫아라, 서랍 닫으라는 말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자매품으로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릴 때는 손으로 가볍게 눌러 달라” “택배 상자를 탁자 위에 올리지 말고 바닥에 놓아라” “스타일러 내부 먼지를 닦아라” 등이 있다.

30년 이상 자기는 옷만 입고 밥 먹고 출근하면 어머님이 식탁 치우고 옷장 문 닫고 불 꺼 주는 삶을 살았던 습관이 그가 쉰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내가 10년 넘게 말해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잘 하다가도 컨디션이 좀 나빴다 싶으면 어김없이 찬장이 열려 있고 옷장 서랍은 양말이나 속옷이 걸린 채 반쯤 닫혀 있다.

나라고 달리 자랐나? 앉아 공부하고 잘 다려진 교복 입고 등교하고 깨끗한 침대에 누워 잤다. 하루 두 끼는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따뜻한 도시락을 담 너머로 받으며 살았다. 심지어 나는 혼자 살 때도 요리를 하지 않았다. 사먹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째서 가사를 계속 생각해야 할까? 어째서 이 관리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는가? 나는 어째서 이 관리라는 정신적 노동을 멈출 수 없을까? 어째서 내 에너지를 “화장실 휴지를 마지막에 다 쓴 사람이 보충하자”는 규칙을 사수하거나 “이제 부엌 커튼을 빨 때가 된 것 같다”는 판단에 써야 하는가?

잠은 진즉에 다 깼고 화가 난다. 억울하다. 이 억울함 시리즈는 시시때때로 튀어나온다. 여기에서 가장 기묘하고 심지어 화가 나는 점은, 남편이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분명 ‘평균 이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관리와 돌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혼자 살았어도 나는 주기적으로 커튼을 빨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 커튼을 세탁할 때가 되었는데 내가 할지, 파트너에게 말을 할지, 가사도우미님께 말을 할지 고민하는 데 지금만큼 시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살았어도 나는 설거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과 살았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좀 피곤해서 지금부터 잠을 자고 싶으니, 나갈 때는 불을 끄고, 문을 닫고, 집안 일을 한다면 조용한 일을 해 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평화로이 한숨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과 남성에게 학습시킨 일상이 너무나 다르다. 사회에서는 관리감독자의 지위와 결정권이 고평가되는 반면, 가사에서 필수적인 관리와 판단과 조율은 능력이나 노동이 아니라 ‘잔소리’, ‘시키면 할 텐데’로 저평가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알아서 잘 하는 일은 그냥 하는 것이고, 남성이 누가 안 시켰는데 냉장고 청소라도 알아서 하면 아주 일등 신랑감에 살림왕이다. 이 현격한 차이는 안이하게 용인되어 왔다.

나는 이성과의 법률혼을 선택했을 때 여러 가지를 감수해야 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제 잘난 점만 잘 알던 스물여섯 여학생은 기존 제도에 머릿수를 보태는 ‘정치적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당사자성을 상실하고 기성 관습의 편안함을 향유하는 보수적인 결정을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일상 유지가 디폴트로 내 몫이 될 줄은 몰랐다.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업무를 사적으로는 분담하고, 사회적으로는 가시화하고, 정치적으로는 의제화하는 것이 기혼 여성이 된 나의 일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이토록 당연하고, 흔하고, 필연적이라는 것을.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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