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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흙수저를 배려하는 입시가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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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흙수저를 배려하는 입시가 ‘공정’하다

입력
2019.11.0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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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이 수능

내신ㆍ균형선발 늘려 다양성 확보해야

집값 안정ㆍ저출산 완화에도 큰 도움

부모 소득과 배경이 자녀의 대학 입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대 학생 4명 중 3명은 월 소득 900만원이 넘는 부유층 자녀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강북 학생들의 지능ㆍ노력 등을 감안한 서울대 입학 확률은 1.7배 차이가 나지만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20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객관적인 시험 점수로 선발하는 정시 비중을 늘리면 이런 불균형이 완화될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확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 소득과 배경이 자녀의 대학 입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대 학생 4명 중 3명은 월 소득 900만원이 넘는 부유층 자녀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강북 학생들의 지능ㆍ노력 등을 감안한 서울대 입학 확률은 1.7배 차이가 나지만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20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객관적인 시험 점수로 선발하는 정시 비중을 늘리면 이런 불균형이 완화될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확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2년 대학에 입학했다. 이른바 학력고사 세대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망국병으로 꼽힌 과외 교습을 전면 금지했다. 이어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로 대학별 본고사를 금지하고 학력고사를 도입했다. 학력고사는 매우 단순한 입시제도다. 단 한 차례 치른 4지 선다형 시험 점수로 70만~80만 수험생을 줄 세운 뒤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게 했다. 320점 만점(필기)이라 어느 구간에선 동점자가 수천 명씩 나왔다. 이 경우 재학생이 재수생에, 연소자가 연장자에 우선했다.

대학에 들어가니 서울 출신은 30%도 안됐다. 팔도강산에서 다양한 계층의 학생이 들어왔다. 남도 외딴 섬의 구수한 호남 사투리와 지리산 산골마을의 영남 사투리가 어우러졌다. 논 팔고 소 팔아 입학한 농부의 딸도, 서울 강남에 사는 병원장 아들도 있었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었다. 이런 경험은 40, 50대 학력고사 세대에게 객관적인 점수로 뽑는 정시가 부모 능력이 작용하는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신분제 전형(학종)보다 점수 줄 세우기(수능)가 차라리 더 낫다는 것이다.

여론도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수능이 더 공정하다고 본다. ‘조국 사태’로 학종의 민낯이 드러나기 전부터 그랬다. 학종은 내신성적과 함께 자기소개서, 수상경력 등 비교과 활동을 함께 본다. 교육적 가치에는 더 부합하는 전형이다. 객관식 시험에 미래를 맡기는 건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모 배경이 뛰어난 금수저에게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서민들은 수백 가지나 되는 학종의 전형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자녀 스펙 쌓기에 도움을 줄 형편도 안 된다. 강남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 학생의 SKY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배경이다. 특목ㆍ자사고 지원자는 90%가 서울대에 합격하는 반면, 일반고 지원자의 합격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여론처럼 정시가 더 공정한 걸까. 금수저 입장에선 수능이 학종보다 더 유리하다. 학종은 상위 10% 금수저 간 경쟁이 치열한 데다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도 있다. 수능은 과외 없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학력고사와는 차원이 다른 시험이다. 당시엔 대치동 학원가도 8학군도 없었다. 경제적 불평등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비싼 사교육이 명문대 입시의 당락을 좌우한다. 유명 학원을 동원할 수 있는 금수저에게 절대 유리하다. 실제 서울대가 현재 20% 수준인 정시 비중을 50%로 늘리면 강남권 합격자가 2배 늘어나는 것으로 예측됐다. 학종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정시 비중을 아무리 늘려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미국 명문대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의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준다. 부모 도움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아 온 상류층 백인학생과 가난한 흑인학생을 동일 잣대로 평가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학생을 뽑는 게 대학 경쟁력과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명문대는 돈 많은 부모에 의해 기획된 학생들에게 점령되면서 다양성도 창의성도 사라지고 있다. 이런 획일적 인재로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헤쳐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계층별 지역별로 다양한 인재를 뽑으려면 흙수저를 배려하는 전형을 고민해야 한다. 내신성적만 반영하는 학생부 교과 전형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지역ㆍ학교 균형선발 확대도 방법이다. 부모 소득과 대학입시의 연관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자녀 입시에 목숨 건 강남 학부모들이 탈출하면서 집값이 안정되고 저출산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경쟁이 너무 치열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해치는 게 현실이다. 학부모는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에 신음하고 청소년들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약자 우대 전형은 ‘차별’이 아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다양한 인재를 키우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다. 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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