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근린공원 야산 수색… 유족들 “30년을 폐인처럼 살아”
유기했다고 진술한 곳엔 아파트… 소지품 발견된 야산 조사
“자식 잃은 죄인인데 무슨 말을…”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풀리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아버지 곁을 지키던 고모는 “30년 동안 모든 식구들이 폐인처럼 살았다”며 “아무리 암울한 시대였다 한들, 살인을 단순 가출 사건으로 무관심하게 보낼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1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의 한 근린공원 야산 입구.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지휘 하에 경찰의 수색작업이 시작됐다. 이춘재(56)가 자신의 범행이라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9세)양의 흔적을 찾기 위한 수색이다.
본격 수색 작전이 시작되기 전 휑한 표정을 한 김양의 유가족들이 현장에 도착, 수색 현장 입구에다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김양이 좋아했던 사탕도 함께 놓았다. 유족들이 헌화하는 동안 경찰들이 부축하며 도왔지만, 유족들은 계속 무릎이 꺾이며 수시로 주저 앉았다.
김양은 화성 8차 사건(1988년 9월 16일) 다음 해인 1989년 7월 7일, 화성군 진안리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다 사라졌다. 김양 아버지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 있을 지 모르니 수사를 해달라고 경찰에 두 번이나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양을 ‘가출인’으로 분류, 단순 실종사건으로 끝냈다.
1989년 12월 참새잡이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야산에서 김양의 치마, 가방, 속옷 등을 발견해 신고까지 했는데도, 30년 동안 경찰은 이 사실조차 김양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양 가족들은 김양의 소지품들이 남아 있었다는 걸, 이춘재의 자백으로 경찰의 재수사가 이뤄진 최근에야 통보받았다. 김양 고모는 맥없이 쓰러지는 김양 아버지를 부여잡고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오빠는 ‘왕따 당했다’고 한탄한다”며 울었다.
통곡하던 유족들이 돌아가자, 경찰은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무엇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족들을 또 한번 울릴 순 없는 일이다. 수색작업은 쉽지 않다. 이춘재가 김양의 시신과 소지품들을 묻어 버린 곳이라 진술한 곳을 찾아 경찰이 확인해본 결과 30여년전 그 때 김양의 소지품이 발견된 곳과는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곳은 지금 아파트가 들어섰기에 발굴을 해볼 수 없다.
다만 경찰은 김양 소지품이 발견됐던 근린공원 야산 일대 3,636m²(약 1,100평) 넓이의 땅을 샅샅이 뒤져볼 계획이다. 120여명의 인원을 투입, 지표면을 5m단위로 나눠 하나씩 다 확인한다. 지표투과레이더(GPR) 3대와 금속탐지기 3대 등의 장비도 동원했다. GPR은 땅에다 주파수를 발사해 지층의 변형 여부를 확인하는 장비다. 이 장비로 유골이 묻혀 있을만한 곳을 가려낸 다음, 2일 오전 9시부터 실제 발굴작업도 진행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진행하는 발굴작업이라 10㎝ 정도 흙을 걷어낼 때마다 특이 물질 존재 여부를 확인해보는, 아주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원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장은 “지금 수색 구역이 수색 가능한 구역 중에서는 발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며 “수색 작업은 일주일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1989년 사건 당시 김양을 가출인으로 분류했던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도 이어갈 계획이다.
화성=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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