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출마 선언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내부의 적’이 될 수 없어 자괴감, 지난 4년 전투요원처럼… ‘여기서 일단락이 맞다’ 결심
“‘조국 사태’로 인간적 한계 느껴… 악마의 변호인 나오기 어려운 당 분위기 극복됐으면”
“저는 손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에 오래 있었더라면 박용진, 금태섭 의원보다 더한 쓴소리를 했을 거다. 그게 아니면서 당이나 지지자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내부의 적’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없었다. 자괴감이 계속 들었다.“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표 의원은 지난달 돌연 총선불출마를 선언해 여당을 뒤숭숭하게 했다. 표 의원은 ‘여당 초선 의원’인 자신을 “손님 같은 존재”로 생각해왔다고 했다. 냉대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랫동안 당과 함께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검열해 왔다는 뜻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외부인으로서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더 남아 있다면 기득권 구조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 여기서 일단락 짓는 게 맞다.”
불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로 표 의원은 ‘지킬 수 없었던 초심’을 꼽았다. 그는 “당리당략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을 갖춘 정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꿈꿨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특히 “정작 신사의 품격을 갖춰야 할 상황에선 (야당을 향해) 전사처럼 싸우고 소리를 질렀고, 전사의 용맹함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선 (당내에서) 소신 발언을 하지 못하고 신사의 품격만 내세워 뒤로 물러난 것 아닌지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당리당략에 휘둘리는 정치’에 대한 고민은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서 더 커졌다. 표 의원은 “누군가를 무조건 지키고, 야당일 때 한 이야기를 여당이 돼서 정반대로 해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내가 봐도 문제는 있는 것 같았지만, 나마저 공격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외부에서 온 인물로서 필요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일을 바로 잡는 역할을 못했던 고민, 그로 인해 불출마를 던지고 물러가는 일에 대해 중진들께서 숙고해주시면 좋겠다”며 “새로 누가 오든 간에 제가 느낀 고민과 고뇌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표 의원은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참사를 만들 수 있다”며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을 우려했다. 그는 “이질적 존재,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할 사람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그 역할이 용인되고, 제가 느낀 두려움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도 제약되지 않는 공론장이 펼쳐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극복했으면 하는 두 가지로 표 의원은 ‘피해의식’과 ‘지나친 위기감’을 꼽았다. 그는 “당에 시대의 피해자들이 많이 계시지만, 여당이 된 만큼 더 이상 수사기관을 향해 ‘저들이 또 우리를 핍박하는 구나, 역시 우리 편이 아니구나’라는 피해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이런 점을 수 차례 말씀 드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만 두는 것이 오히려 쉽다’는 한편의 지적에 대해서는 “도망가는 것은 비겁한 일이 맞다”면서도 “오죽하면 저러겠나, 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저는 갈등을 극복하는 역할이기 보다 다툼, 적대시, 공방을 수행한 전투 요원이었다. 자괴감이 컸다. 거만한 말씀인지 모르지만 다음 총선 공천과 당선에 크게 위협을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는 속마음을 봐주셨으면 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인터뷰 전문
-불출마 입장문에 ‘초심’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겼는데.
“아시다시피 전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를 하고 싶었던 사람도 아니다. 정치권의 연락을 다 거절, 회피하고 도망 다니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요청에 2015년 연말 입당하고 정치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엇 때문에 왜 정치를 해야 하나, 꼭 한다면 어떤 모습과 자세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또 나라는 한 사람의 개성이나 소신 원칙을 팔거나 훼손시키지 않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것은 ‘당리당략에 휘둘리거나 소신, 원칙이 훼손되는 때가 오면 저를 내쫓아주십쇼’, ‘그 전에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때 초심은 세 가지였던 것 같다. 당리당략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감을 갖춘, 전에 보시지 못했던 정치를 보여드리겠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보고 배울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
-해보니 초심을 지키는 일이 왜 특히 어렵던가.
“야당 때는 특별히 초심을 지키기 어렵다거나 하는 생각은 못했다. 여당이 되면서는 상당히 힘들었다. 여러 힘든 일이 반복됐다. 일반적 정치인들이 버텨나가는 것들을 제가 특히 크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는데 힘든 일이 반복됐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당연하게 여기고, 누군가를 무조건 지키고, 야당이었을 때 한 이야기를 여당이 돼서 정반대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돌아보면 약속한 신사의 품격을 지켜야 할 때는 정작 (야당을 향해) 전사처럼 싸우고 소리를 질렀고, 반대로 전사의 용맹함으로 (여당 내에서) 소신발언을 하고 쓴소리를 하고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신사의 품격만 내세워 뒤로 물러난 것 아닌가라는 갈등이 많았다.”
-결정적 결심으로 이어진 건 언젠가.
“그런 고민들이 쌓여서 7월에 아내, 두 아이와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제가 겪는 심경과 가족들이 주위로부터 듣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는데 결과가 일치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꼭 오랫동안 정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필요할 때 그만둬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유사한 얘기를 나눴다. 최근엔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제 나름의 고민이 컸다.
저 나름대로 여당 의원으로서 주어진 역할 다한다는 생각으로 국면에 임했다. 초심에 비춰서는 고민, 갈등의 지점이 많았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힘들고 괴로웠다. 가족과 불출마를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조국 국면의 특히 어떤 점이 힘들었나.
“저는 피해 끼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까 제 오피니언이 있어도 제시했을 때 당이 곤혹스러워 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공격하는데 나마저 그렇게 함으로써 후보와 당이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인간적 한계로 느껴졌다. 제가 가진 생각과 정보만 가지고 그렇게 해도 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부의 적 같은 모습은 될 수 없었다. 자괴감은 계속 들었다. 가열찬 공격이 들어오는데 혼자 광야에 내던져진 것 같은 후보자가 있었다. 내가 볼 때도 문제는 있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나마저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당이 건강하다면 초선 의원의 그런 의견, 고뇌가 진작 자연스레 공유됐어야 하지 않나.
“당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씀 드려도 당은 민주적이다. 다선이라고 해서 초선 의원을 경시하거나, 발언의 무게를 가볍게 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관행과 문화와 역사의 문제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사석에서 어떤 우려를 해도, 이걸 강한 목소리, 집합적 목소리로 내지 않은 배경에는 상처,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 분열로 힘들었던 상처,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던 기억이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어떤 임계점을 다들 매우 높게 책정하고 있다.
정말 웬만하면 굳이 불필요하게 분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정서가 있다. 그 부분을 잘 건드려주는 것이 박용진, 금태섭 의원 등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목소리를 낼 때도 아직 임계점이 아니라는 반응이 꽤 있었다. 저도 반성을 많이 한다.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제 역할을 못했다.”
-결국 다들 진솔한 의견은 내기 어렵다는 것 아닌가.
“사실 저는 조금 손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찰이었고, 경찰대 교수였고, 보수적인 쪽에서 일을 해오던 사람이었다가 입당하지 않았나. 당에는 그간 오랜 독재 정권 하에서 핍박 받은 분들, 그 일부 중에는 가해자가 경찰이었던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시대정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저는 여기에 도움을 드려야 할 역할로 와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저 같은 성격에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박용진 금태섭 의원보다 더 쓴소리를 먼저 강하게 냈을 것이다. 나름의 배경이 있지만, 지금 민주당은 특히 핵심 지지층의 역할이 대단히 강하다. 이 지지층이 압박을 준다는 평도 있지만, 저를 포함한 상당수 의원은 이 지지층에게 감사함도 느끼고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여당이니까 내부에서도 문제제기,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와 지지층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참아야 한다는 것들이 복잡적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쓴소리를 해야 할 임계점에 대해 상당히 높게 책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에 대한 지분이 없다고 말을 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떤 참신한 초선이 와도 제 역할은 하기 어려운 상황 아닐까.
“부족한 것은 제 몫이다. 당으로부터 그런걸 느꼈다는 건 아니다. 모두 잘해주셨고, 함께 하려고 했고, 이방인이나 경쟁자로 보는 시선도 느끼지 못했다. 당직자들에게서도, 지지자들에게서도 늘 환대를 많이 느꼈다. 그만둔다는 것이 그래서 더 힘이 들기도 한다. 일단 제가 처한 여러 한계와 특성 때문에 4년간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외부인으로서의 효과를 못 낸 것은 사실이다. 저는 특히 남아 있으면 더욱 당의 기득권의 구조 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일단락 짓고, 다른 더 객관적일 수 있는 분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찬 대표님께도 부탁 드렸다. 꼭 참신한 인재를 영입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당리당략에 대한 고민을 ‘조국 국면’ 이전에도 한 바 있나.
“대표적으로는 지방선거 때 그랬다. 이재명 지사를 둘러싼 논란을 거치기도 했다. (표 의원은 당시 "'혜경궁 김씨' 계정의 트위터 이용자가 김혜경씨라면 이 지사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법정에서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가 친문 지지자 및 이 지사 지지자 측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또 전국을 다니며 후보 지원 유세도 했는데, 제가 지원 유세한 후보 중 한 분은 나중에 가정폭력을 해 사임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당시엔 몰랐는데 제가 그 분과 사진도 찍고 지원유세도 했다.
또 방송 출연을 했을 때도 그랬다. 제가 방송에 나가는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상대방 패널은 무조건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저는 반대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이 고정돼 있었다. 어느 순간 정치적 도구가 돼 있는 듯 했다. ‘상대방이 워낙 반대만 해대니 그런 역할도 필요하다, 이 자체가 하나의 역할이다, 롤이다’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했지만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언제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내가 가진 초심은 다른데, 내 정체성과는 다른 데’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반대만 하는 야당도 고민을 키우는데 한 몫 했다는 얘긴가.
“정치나 정책에 대해선 당연히 찬반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그걸 정치의 틀 안에서, 국회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주고 받고 수정도 해나가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모두 답이 정해져 있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였다. 자유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라는 결론을 가지고 때로는 막말, 무논리, 비논리, 비합리 위에서 정반대 주장만 했다. 모든 사안에 반대하고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저만 신사인척, 선비인척 하면서 당이나 정부에 피해를 끼치는 모습이 되는 건 어려웠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는 그런 모든 쟁점 현안이 수렴되는 곳이다 보니 그 극명한 충돌이 더했다. 법안만 올라오고, 국무위원들만 출석하면 한국당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했다. 우리가 야당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그 기회를 이용해서 공격의 포인트로 삼고, 법안의 내용과 관계없이 공세하고, 여당은 지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선을 다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경륜이 있는 분들은 ‘그래 너는 떠들어라, 맨날 그런 거지 뭐’라고 버티시지만, 그게 잘 안됐다.”
-야당이 달랐다면, 결과도 달랐을까.
“야당 의원들께 사석에서도 많이 말씀 드렸다. 우리 보수가 건전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일방적 공격만 하면 지지율도 안 오르고 보탬도 안되지 않냐. 그때 딱 돌아오는 말이 뭔지 아시나. “표 의원, 민주당은 더 했어요. 더 심했어요. 얼마나 사납게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괴롭혔는지 아세요.” 정말 그래서 낙마한 인사 청문회, 총리 후보자가 많았다.”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실은 불출마 선언문을 쓰며 매우 고민했다. 담을 부분과 담지 않을 부분을 고심했다. 아내와 고민하며 빠진 부분이 많다. 실제 효과는 없는데 누군가에게 상처만 되는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그저 제 불출마가 잔잔한 충격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제가 필요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점, 다른 목소리를 내고, 바로 잡는 역할을 못했던 고민 때문에 불출마를 던지고 물러가는 일이 뭔가를 남기면 좋겠다. 중진들께서 한번 숙고해주시면 좋겠다. 새로 누가 오든 간에 그분이 제가 느낀 고민과 고뇌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당을 위해서 집단사고, 그룹싱킹은 위험하지 않나.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케네디 대통령의 피그만 참사처럼 잘못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질적 존재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악마의 변호인(토론을 불 붙이기 위해 일부러 반대 의견을 말하는 내부자)같은 역할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외부인이었던 초선이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 역할이 용인되고, 건강하게 여러 비판들을 서로 주고받고, 제가 느꼈던 고민이나 두려움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를 끼치거나 상처 주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제약되지 않는, 만개하는 공론의 장이 펼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당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까.
“극복되었으면 하는 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피해의식이다. 저도 나름대로는 피해의식이 있다. 국정원 사건으로 인한 거다. 그런데 우리 당 대다수 구성원은 과거에 피해자 입장이었다. 국가보안법, 집회시위법, 종북몰이, 색깔론의 피해자이자 시대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피해의식이 강하다. 검경 등의 기관에서 의도 없이 행한 것에 대해서도 ‘저들이 또 우리를 핍박하는 구나, 역시 우리 편이 아니구나’하는 정서가 돌출되고 자주 목격된다. 몇 차례 말씀 드리긴 했는데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과거 야당이라면 모르겠는데 현재 여당이자 집권당이 되지 않았나. 합리적 보수층까지 끌어안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한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이제 시대의 주류가 될 때다. 세상을 바꿨고 현재 누군가에겐 기득권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과거 피해의식은 극복할 때가 되지 않았나. 피해자에게 피해의식을 극복하라는 이야기를 누구도 대신 하기는 힘들다. 특히 제가 요구하기는 힘든 거였다.
둘째는 ‘여기서 밀리면 끝이고 계속 밀릴 거야’라는 위기의식이다. 이건 과거의 경험이자, 한국당이 행해 온 행태 때문에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우리의 문제가 발견됐어도, 단 하나라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한 공격이 시작된다. 그래 사과했어? 그럼 책임도 져. 책임을 졌어? 그럼 이것도 책임지고 다 책임져. 다 물러나. 이런 식으로 공격이 이어지는 경험들이 쌓여 있다. 때로는 국민만 바라보자면, 국민들이 바라는 깨끗한 사과와 인정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데, 야당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국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야당을 바라보면 잘못도 인정을 할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진정 필요한 상황에선 국민들이 원하는 사과를 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면, 국민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무리한 공격이 힘을 잃지 않을까 싶다.”
-여유를 갖는 정치라는 게 어려운 일 같다.
“모든 사안이 첨예하다 보니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닥치고 공격만 하자’는 상황이 계속 된다. 조금은 숨을 돌릴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 과거 기득권 여당은 얼마나 여유로웠나. 약이 오를 정도로 여유롭고, 배려도 하고, 존중하고, 말이라도 점잖게 할 때가 있었다. 당시 야당은 늘 조바심을 느끼고 공격적이었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님의 ‘싸가지 없는 진보’ 진단이 나오기도 하지 않았나. 젊은 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려면 그런 얄미울 정도의 자신감, 품격, 매너를 지닌 여당, 그런 여당과 대통령을 존중하는 야당의 구도를 언젠가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에 대한 책임을 말했는데, 20대 국회 일원이라 더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20대 국회는 주어진 시기적인 부분이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요소가 가장 강할 것이다. 탄핵이 한쪽에서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른 시대를 여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극단적 분열과 갈등의 강화제, 촉매제 역할도 했다. 그 탄핵의 경험을 잘 풀어냈었으면 정말 대한민국의 도약 화합 평화 발전의 에너지가 됐을 텐데 안타깝다. 그 직후 너무 저를 포함한 우리가 ‘승리했다’, ‘나라를 전부 새로 짜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탄핵으로 패배감을 느낀 분들에 대해서도 위로나 기댈 언덕은 필요했을 텐데 부족했다. (그런 정서를 잘 다뤄) 친박 세력이 역사 속으로 소멸해 들어갔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거다. 그렇지 못해 한국당이 그 정서를 계속 이용하고, 에너지로 삼아 회생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승리자로서의 여유, 아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쫓기듯 적폐청산에 집중했다. 반혁명, 되치기, 반역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그 부분이 20대 국회를 최악으로 만든 것 같다. 한국당은 탄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의 정서를 계속 자극하고 이용하고, 현 정권의 허점을 지속적으로 공격했고, 여당은 그들을 무조건 적으로 설정해 어떤 실수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사도 너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만 꾸렸다. 합리적 중도층까지 포용하는 보편적 국정운영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20대 국회가 거대한 진영 싸움과 소용돌이의 상징적 전투장이 됐다.”
-불출마 선언 이후 나온 ‘그만 두는 것이 오히려 쉽다’는 반응은 어떻게 봤나.
“맞는 말씀이다. 만류해주시는 건 감사하고 죄송한 일이다. 사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끝내겠다고 말씀 드리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오죽하면 쟤가 저러겠나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거만한 말씀인지 모르지만 저는 공천, 당선도 크게 위협을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주민들께서 잘 봐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오죽했으면 저 좋다는 의원을 그만둘까, 그 속마음을 봐주셨으면 한다. 꼭 우리 당에만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여야 전반에서 정치를 오래하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4년 동안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이의 고언이니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저 같은 초선에게서 다시는 ‘지옥 같았다’는 표현, ‘좀비에 물린 것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게 해주시면 그 이익은 국민께 국가에 돌아가게 되지 않겠나.
지금 여야는 모두 노래 ‘작은 연못’ 속의 붕어 같은 아둔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못 속 붕어 두 마리가 싸우다 한 마리는 죽고, 다른 고기도 연못이 썩어 죽는 결과다. 저도 지난 4년을 돌아보면 그 환경을 극복하는 역할이기 보다는 다툼, 적대시, 공방을 더 앞서서 일선에서 수행한 전투요원이었다. 갈등을 가중시켰다. 거기에 자괴감을 느꼈다. 오죽하면 쟤가 저러겠나 해주시면 좋겠다.
또 정치가 다는 아니다. 국회가 다는 아니다. 꼭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해야만 우리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맞는 자리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너무 블랙홀 같다. 모든 영역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인지도가 있고 알려지면 정치로 빨려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균형, 중립, 중재가 없다. 과거의 김수환 추기경이나 학계의 어른들, 예술계의 어른들처럼 정치적으로 중립적 위치에서 역할 해줄 분도 없지 않나. 지금은 모두가 정치로 빨려 들어와 있다. 학자들도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어, 어떤 의견을 내도 당파적으로 해석된다. 종합하자면 제가 꼭 정치에서만 필요한 사람은 아니다. 더 유익하게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으로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중립적 위치에서 울림을 내고 싶다는 얘긴가.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울림과 효과를 가지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당분간 여전히 한쪽 당파의 이야기로 보실 것이다.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노력의 결과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온다고 믿는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믿을만한 사람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고 싶다. 특히 범죄 문제를 중심으로 역할을 하고 싶다.”
-차후에라도 영입 제안이 온다거나 다른 정치적 진로 모색에 관한 제안이 온다면.
“지금으로선, 정치인으로서의 표창원은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만에 하나라도 다시 한다면 오로지 민주당이다. 제가 판단하고 선택한 준거집단, 시대의 정신은 민주당이다.”
-단기 장기적 향후 계획은.
“구체적 계획은 자제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현재의 역할을 방해 할 수 있다. 일단 임기 중 최선을 다할 거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일할 거다. 그래야 안정적 국정 운영이 가능하고 포용력 있는 여당을 통한 협치도 가능하다. 그게 아닐 경우 우리 사회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그게 끝나고 나서는 내년이 은혼식이라 우선 아내와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그 이후에는 책을 쓴다거나, 강의를 한다거나 할 수 있겠다. 범죄 문제를 중심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지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
“저는 2012년 연말 국정원 사건으로,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사실 제가 하는 발언으로 인해 경찰대 전체가 공격을 당하니 그만두고 나왔는데, ‘너 민주당과 밀약이 있지?’하는 시선도 있었다. 동시에 전혀 저를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와 지지도 받았다. 당시 대선에 패배하고 나서는 제가 위로를 드리고 싶어서 프리허그에 나섰었다. 광주에서는 3,000명 넘게 와주신 분들을 만나며 감동이자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격려, 지지해주신 분들께 불출마 선언 이후 아쉽다는 말씀을 들으면 실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 분들께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불출마 입장문도 구구절절 길게 썼다.
모든 것은 제가 가진 독특함과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제가 버틸 수 없을 만큼 한국 정치가 나쁘다거나 하는 정치 혐오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저는 중립, 객관의무를 내제화 하고 범죄 분석을 해온 사람이라 그런 본질과 정치가 충돌하는 측면에 보다 컸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너무 100m 달리기를 하듯 ‘오버런’했다.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달리기를 해서 지쳤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제가 선택한 불출마가 잔잔하게라도 충격파를 만들 수 있다면, 많은 분들께서 뭔가를 숙고해주신다면, 그것으로도 또 뭔가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그리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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