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도 기혼 남성이 압도적
가부장제의 마지막 단계에 와서
탈연애ㆍ에이섹슈얼… 다양한 관계들 나타나
서강대 정유성 교수

“우리는 가부장제가 정착되고, 또 그에 따른 일대일 모노가미(monogamy ㆍ일부일처제) 관계가 정착된 이후의 기록만을 공식적으로 갖고 있어요. 더 이전에 존재하는 여러 비공식 자료들에서 행간을 읽어보면 원래의 결혼 풍습은 알다시피 ‘마음대로 짝짓기’, ‘난혼’이었습니다. 역사적인 과정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사랑과 섹슈얼리티(성적 욕망)의 방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왔다는 겁니다.”

20여 년 동안 대학에서 꾸준히 여성학 강의를 열어 온 정유성(62ㆍ교육문화학ㆍ여성학 전공) 서강대 교수는 사랑과 성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른 ‘사회적 구성물’이었다고 말한다. 일부일처제는 “가부장제 정착의 마지막 단계”라는 게 정 교수의 해석이다. 남성중심적인 구조 하에서 남성들은 폴리가미(polygamyㆍ일부다처제)를 누리고 여성들에겐 모노가미가 강요된 형태였다가 오늘날 쌍방의, 배타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형태가 정착됐다.

정 교수는 일부일처제를 지탱하는 사회ㆍ문화적 기반이 느슨해져 가면서 다른 형태의 연애와 섹슈얼리티의 방식이 등장하고 있으며,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 연애)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젊은이들의 부모세대까지만 해도 이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요새는 아니죠. 연애 상대와의 관계 자체도 자유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고요. 또 근래에는 폴리아모리 뿐만 아니라 탈연애(연애를 하지 않음), 에이섹슈얼(asexualㆍ무성애 정체성) 등 다양한 모습들이 가시화되고 있어요. 이렇듯 성과 사랑의 방식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부일처제 기반의 사회에서 다른 방식의 사랑은 도전일 수 밖에 없다. 정 교수는 “아직도 대단히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연애 및 결혼 문화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폴리아모리의 ‘비독점’ 연애 실천은 과감한 시도로서 주목할 만 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사랑과 성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어떤 형태의 관계이든 간에 지배와 권력, 소유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본질로서의 가부장성 극복 없이 연애 당사자의 수만 늘린 ‘독점적 폴리아모리’라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일대일 관계 안에서도 비독점적이고 건강한 관계가 가능하다.

정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폴리아모리라는 선택지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 늘 되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바 일루즈의 저서 ‘사랑은 왜 아픈가’에는 ‘선택의 아키텍처(architecture)’라는 말이 나옵니다. 폴리아모리 실천자들도 외딴 섬이 아닌 분명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어떠한 구조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거예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페미니즘이 관심을 끌고 있는 지금도 사랑은 여전히 아플 수밖에 없고, 그 상처의 주 당사자는 여성들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이 그 구조로부터 얼마큼 자유로울 수 있을지 꼭 한 번 물어야 합니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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