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24일 밤 경기 의정부시 홍복산 자락에서 전병호 엽사가 사냥개와 함께 멧돼지를 수색하고 있다. 의정부=홍인기 기자

“불 꺼!”

해가 일찍 떨어진, 늦가을의 쌀쌀한 공기가 가득한 산에 오른 지 40여분쯤. 컹컹, 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리자 엽사는 목소리와 자세를 동시에 낮췄다. 위성항법장치(GPS)를 보니 사냥개 위치는 47m 떨어진 저 위쪽. 산비탈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건 오소리 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수색이 다시 시작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번져나가자 정부는 그 대책 중 하나로 야생 멧돼지 포획을 선언했다. 지난 24,27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 의정부 야생 멧돼지 포획 현장에 동행했다.

지난 24일 밤 경기 의정부시 홍복산 자락에서 전병호 엽사(오른쪽)가 사냥개와 함께 멧돼지를 수색하고 있다. 의정부=홍인기 기자

포획에 나선 이는 35년 경력의 베테랑 엽사 전병호(60)씨. 전씨와 팀을 이룬 건 3마리의 개다. 썰개(수색견)인 ‘메리’, 뒷개(싸움견)인 ‘수박’과 ‘불’. 썰개가 멧돼지의 흔적을 추적하면 뒷개가 포위하고 개 목에 달린 GPS 장치의 신호를 보고 뒤따르던 엽사가 최종 사살한다.

기자가 동행한 첫날인 24일은 멧돼지가 의정부 홍복산 일대를 휩쓸며 밭이며 묘를 뒤지고 다닌다 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메리, 수박, 불 세 마리를 풀어놓자 금세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멧돼지가 땅 곳곳을 헤집어 둔 흔적들이 역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24일 밤 경기 의정부시 홍복산 자락에서 전병호 엽사가 사냥개를 따라 산비탈을 내려가고 있다. 의정부=홍인기 기자

썰개 메리를 쫓다 이내 숨이 차 올랐다. 멧돼지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다닌다. 그걸 쫓는 썰개를 따라가야 하니 등산로는 언감생심, 가파른 산비탈에다 가시덤불까지 모두 다 통과해야 했다. 추적을 시작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주머니와 양말은 흙으로 가득 찼고, 바지엔 잔가지와 도깨비풀이 잔뜩 달라붙었다.

그렇게 헤맸지만 멧돼지는 만나지 못했다. 27일엔 남양주 일대 용암산과 수락산에 다시 올랐다. 여기도 멧돼지 출현 신고가 접수된 곳이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동안 산을 뒤졌지만 멧돼지를 찾을 수 없었다.

멧돼지 사냥은 쉽지 않다. 일단 총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엽사 한 명이 야간에 주로 움직인다. 더구나 멧돼지는 의외로 잘 숨는다. 전씨는 “밤에 주로 사냥하다 보니 멧돼지가 바로 옆 덤불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24일 밤, 함께 수락산 자락을 오르던 전병호 엽사가 중간에 경찰과 시청 부탁을 받아 경기 의정부시의 한 도로 옆에서 차에 치여 숨진 멧돼지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이틀 간 따라다니며 만난 유일한 멧돼지였다. 정준기 기자

성질 사나운 멧돼지, 아니 성질이 사납지 않은 멧돼지라 해도 코너에 몰리면 무섭게 달려든다. 사냥개가 오히려 멧돼지에 물려 크게 다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전씨만 해도 썰개 한 마리가 부상 중이라 했다. 썰개가 조금 멀리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긴장해야 한다. 뭔가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도시는 멧돼지를 똑똑하게 만든다. 전씨는 “아무래도 도시 인근 멧돼지들은 사람과 사냥개들을 더 잘 피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시는 지난 14일부터 사흘간 야생 멧돼지 집중 포획을 실시했다. 이 기간 잡은 멧돼지는 4마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전씨는 돼지열병 대책 중 하나로 제시된 대대적인 멧돼지 사냥이 조금 더 세심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단 돼지열병에 감염된 멧돼지가 나온 지역에서는 사냥개를 쓸 수 없다. 바이러스가 퍼질 위험이 있어서다. 전씨는 “접경 지역 멧돼지들은 도시 주변 멧돼지에 비해 접근하기 수월하지만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사냥이 쉽지 않고 놀란 멧돼지가 도망갈 경우 더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사냥이 안되면 먹이로 유인하거나 포획틀을 써야 하는데 효율이 낮다.

경기 파주부터 강원 고성까지 동서로 긴 광역 울타리를 쳐 멧돼지를 막자는 계획도 역부족이라 지적했다. 전씨는 “멧돼지는 1.5m 이상 되는 장벽도 거뜬히 뛰어넘고 강과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 것은 물론, 작은 틈만 있어도 땅 밑을 파고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멧돼지 사체 처리도 문제다. 야생멧돼지 표준행동지침(SOP)에 따르면 멧돼지를 잡으면 시료를 채취한 뒤 사체를 태우거나 묻어야 한다. 전씨는 “시료 채취를 위해 그 무거운 멧돼지 사체를 산에서 지고 내려온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현장 엽사들로서는 지침을 따르긴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전문가들도 좀 더 촘촘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산세가 험한 지형의 특성상 멧돼지 포획 작전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무조건 사살보다는 폐사체 관리, 이동 저지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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