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m-Roach’? 한국에만 있는 혐오표현 ‘맘충’ 어떻게 번역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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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Roach’? 한국에만 있는 혐오표현 ‘맘충’ 어떻게 번역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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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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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서도 인기 ‘82년생 김지영’ 등장한 표현에 영국, 일본, 중국도 관심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한국의 혐오표현 맘충을 소개한 영국 BBC방송 온라인판 뉴스. BBC 캡처

“Mum-Roach.”

2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낯선 영단어가 나타났다. 엄마(Mum)라는 단어와 바퀴벌레(Cockroach)를 합친, 혐오표현 ‘맘충’을 번역한 단어다. 이날 BBC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다루면서 이 표현을 함께 소개했다.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럽진 않은 한국말 한 마디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표현을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각각 마마충(ママ虫), 마충(妈虫)으로 한국의 표현을 그대로 갖다 썼다. 대신 각주를 달아 “해충 같은 엄마를 뜻하는 인터넷 속어”라고 의미를 설명해뒀다. 82년생 김지영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이토 모리코(齋藤眞理子)씨는 올해 2월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에서 “‘마마충’을 일본어로 옮기면 어느 정도 귀여운 인상인데, 한국어에는 혐오스런 어감이 담겨있다”면서 ‘모해충(母害蟲)’ 등 10개 정도 후보군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와 동명의 원작소설 모두 해당 단어가 등장한다. 유모차에 태운 아이를 데리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던 김지영은 한 남성으로부터 ‘맘충’ 소리를 듣게 된다. 남성은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라고 빈정거리며 그를 스쳐 지나간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 문장은 한국 여성들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매우 명징하게 자각하게 하는 언어적 방아쇠”라고 지목했다. 과거 가부장제 신화 속에서 숭배 받던 모성조차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적 차이를 집약하고 있는 표현이란 설명이다.

한국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판 표지(왼쪽)와 중국판 표지.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국내에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안에서만 쓰이는 단어인 만큼 해외 독자들은 이 혐오표현을 다소 낯설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대만인 링유웬(25)씨는 “대만에 맘충이란 단어는 없고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도 없어서 처음에 봤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이런 말을 써도 되는 것인지, 정말 있는 말인지 의아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언론 등에서 이 표현을 집중 조명하면서 “한국 사회에선 남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82년생 김지영을 접한 반응도 다르다. 국내의 경우 일부 남성들에게 이 책은 금서로 꼽히며 여성 연예인들이 읽었다고 밝히는 것만으로도 악성 댓글 등 비난에 시달리는 계기가 될 정도다. 그러나 해외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일본번역가 사이토씨도 “일본 남성은 (소설을 읽고 나서) ‘누이나 여동생,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괴롭다’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여성을 괴롭혔을지 모른다’, ‘먼저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반응이 많다”며 “한국처럼 일본에서 남녀 간의 대립은 생기지 않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시아를 넘어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점차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원작소설의 출판사 민음사에 따르면 도서 82년 김지영은 미국과 영국에서 내년 2월경 동시 출간되고, 헝가리, 스페인, 프랑스, 체코 등에서도 번역본이 나올 예정이다. 이 책의 영국판을 번역한 제이미 장 이화여대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주변에선 이 책이 너무 ‘한국적’이라 외국 독자들이 과연 이 책을 읽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며 “많은 사람이 여성 혐오가 한국이나 동양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장자상속제, 남성 선호 등은 서구에서도 매우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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